소위 「북방외교」에서 평양을 뺀다면 그 알맹이는 두말할것도 없이 모스크바와 북경이다. 이중에서 북경의 움직임이 불투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모스크바와의 사이에 공식국교가 연내에 트이리라는것이 우리쪽의 전망이다.한국과 소련의 「연내수교」 전망은 서울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으나 그러나 모스크바쪽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공식언급이 없다. 물론 「연내수교」가 우리 정부의 공식적 전망이고 보면 모스크바쪽의 소극적반응을 「부정적」인 것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모스크바로서는 갖춰야할 형식과 절차가 우리쪽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두나라의 수교협상 과정에서 자칫 우리쪽에 현실을 잘못짚는 과오가 있지않을까 신중한 반성이 필요하다. 국교관계란 어디까지나 당사국이 제각기 현실적 필요에 의해 결정할 일이다. 우리는 그 「현실적 필요」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한다.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는다면 환상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식수교에 따르는 경제적 기대다. 우리가 연내수교를 거의 공식적 전망으로 삼고있는 것과는 달리 소련의 고위당국자들은 어김없이 「경제교류」의 축적이 필연적으로 정치적교류로 낙착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소련측 입장과 같은 생각이 우리쪽에서도 자주 주장되고 있다. 소위 「소련특수」에 대한 기대다. 최근의 한 보도로는 소련이 『소련정부의 지불보증을 담보로 수십억달러규모의 생필품을 지원』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한다.
물론 생필품이 됐건 내구소비재가 됐건 새로운 수출수요가 생긴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흥부의 보물박씨」나 될것처럼 국민들이 기대를 갖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동유럽 공산체제의 몰락에 따르는 경제적 기회의 확대에 대해서는 이미 서유럽 각국이나 미국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관심을 갖고,또한 상당한 진출을 이미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선진공업국들도 동유럽을 유망한 수출시장으로는 보고있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각국의 기업들은 동유럽의 싼 노임을 노리는 투자시장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보도된 것처럼 소련이 생필품 수입을 계획하고 있다해도 길어서 몇년으로 끝날 「반짝경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것도 소련정부의 지불보증을 담보로 우리측에서 자금부담을 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우리 경제가 살길은 정치적 색채가 짙은 「반짝경기」에 있는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 북미대륙과 유럽시장에서 경쟁을 뚫고 나가는 능력에 달려있다. 동유럽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경쟁력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미국의 자본을 끌어들여 소련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자는 생각도 있다고 한다. 될수만 있다면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역시 성급한 기대를 갖지않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우리의 정치적 목표와 소련의 경제적 이해가 맞물려있는 수교문제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인식을 벗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