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속 촉구·선거 적극참여/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밀물”…전국 10만여개 활동/최근 가두시위까지…“소 지도부 의도적 양성” 분석도소련의 역사적 대변혁은 소련체제를 이제 「독재」와 「민주」의 어느쪽으로 분류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소련 변혁의 추진력인 페레스트로이카는 흔히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불린다. 체제를 통제하는 기성권력의 교체없이 고르바초프를 필두로 한 공산당내 개혁지도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체제 전반의 구조변경이 추진되고 있다는 평가에서 나온 규정이다.
거의 일반화돼 있는 이같은 시각에서는 공산당 독재폐기,국민직선에 의한 각급의회구성및 권한확대,직선대통령제 채택등 일련의 「혁명」들도 「개혁지도부의 성공」으로만 평가한다.
그러나 최근 소련의 정치·사회구조변화와 관련,가장 특기할만한 현상중 하나는 다양한 대중운동조직의 대두와 이들의 정치과정참여이다.
통산 「비공인단체」로 지칭돼 온 이들 대중운동조직은 70년대부터 노동조합·공산주의청년동맹 (콤소몰)등의 공식단체에 맞서는 반체제적 이익집단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과 함께 갖가지 주의와 목표를 내건 조직들이 결성돼 현재는 전국적으로 무려 10만개이상에 이르고 있는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들은 최근의 공산당독재폐기와 동시에 공식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대중운동조직의 공통점은 모두가 기존 공산당지배체제의 개혁과 민주화를 지향한다는데 있다. 그리고 수년전까지만 해도 사미즈다트란 지하간행물등을 통해 체제개혁요구를 외치는 차원의 활동에 머물던 이들이 최근에는 공개캠페인과 가두시위등을 통해 이른바「거리의 민주주주의」의 주역으로 나설 뿐 아니라 각급선거등에 참여,「풀뿌리 민주주의」의 선도역을 맡고있다.
이 대중조직의 존재가 극적으로 부각된 것은 지난달4일 공산당독재폐기를 결의한 공산당중앙위총회를 하루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요구 시위에서였다.
이 「비공인단체」는 대체로 ▲대중전선조직 ▲정당및 정치단체 ▲시민클럽·협회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대중전선조직은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을 중심으로 생성된 다양한 시민협회·클럽등이 연계해 조직한 일종의 협의체로서 기존의 공산당조직에 대항하는 시민세력의 구심점역할을 하고있다.
이 대중전선조직들은 러시아공화국 각지에서 「민주동맹」「민주운동연합」등의 명칭으로 결성돼 각급의회선거에 후보를 지명하고 선거운동을 벌이는등 공산당의 대체세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중전선조직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대중전선조직이라고 할수있다. 리투아니아의 개혁운동조직 사유디스(SAJUDIS)등 발트3국의 대중전선조직이 대표하는 이들 조직들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과 함께 「민족의회」 또는 「지역의회」 개념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즉 이들은 공산당이 장악해 온 권력을 개별지역 또는 민족이 자치적으로 구성한 소비예트(의회)로 되돌릴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은 리투아니아의회를 사유디스가 장악한 것을 필두로 각지역 소비예트에서 대중전선의 진출이 확대됨으로써 실현되고 있다.
시민클럽 또는 협회는 대중운동조직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87년께부터 근로자클럽,유권자협회등의 이름으로 등장한 이 조직들은 초기에는 각지역의 공산당행정당국에 대해 복지·주택·공공서비스 문제등 지역주민의 요구를 주장하기 위한 모임의 형태로 출발했다.
이 시민협회조직은 지난해 인민대표대회선거에서 그 영향력을 과시,현재는 거의 모든 도시에 유권자협회의 결성을 가져왔다. 또 지난해 봄 파업사태에서 공산당지휘하의 공식노조에 맞서 힘을 발휘한 근로자협회는 현재 전소 근로자연맹으로 발전했다.
대중전선이나 시민협회에 비해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정당조직은 사회민주당,기독교민주당,전연방근로자당,녹색당,무정부주의,신디칼리스트협회등의 명칭에서 보듯이 소련의 다당제도입 요구가 논의의 차원을 넘어서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소련이 다당제를 본격 도입할 경우,이들 비공인정당및 단체들이 공산당에 맞서는 공식정당으로 발전할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대중운동조직중에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표방,제정 러시아시대로의 복귀를 외치는 「파머야치(기억)」와 같은 과격단체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이미 지역행정당국이 시민협회대표들을 지역행정위원회에 참여시켜 민중의 의견을 행정에 반영하는 사례가 확대되고 있는점이다.
또 지난2월말부터 진행된 각급소비예트 선거에서는 이들 대중운동조직의 지원을 받은 후보들이 대거 진출,사실상의 다당제의회를 실현시켰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대중운동조직을 고르바초프등 개혁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양성한 페레스로이카의 「후비군」으로 평가한다. 완고한 공산당관료체제를 뛰어넘어 개혁지도부와 민중을 연결하기 위한 고리로 이들 대중조직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페레스트로카자체가 다원적 대중사회의 존재를 인정한데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이념을 최초로 체계화한 타치아나·자스라프스카야(소 사회학회장)는 이미83년의 「노보시비르스크보고서」에서 다양한 사회그룹간의 이해갈등과 대중사회의 등장을 지적하며 기존체제의 「혁명」을 주장했다.
사회의 계급분화나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전 인민국가」 이데올로기를 고수해온 소련체제에서 다양한 대중조직의 실질적 정치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현상은 페레스트로이카혁명이 고르바초프의 표현처럼 「위로부터의 혁명」인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곧 소련체제가 다원적 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수있다.【강병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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