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침발언 탈이데올로기 경향 증거중국외교부장 전기침은 28일 『남북한 통일방식이 반드시 중국의 통일방식과 같거나,동일한 상황에서 진행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외신이 전하고 있다. 이 발언은 한국과 중국의 통일방식의 차이성을 중국지도자가 최초로 공개언급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있다.
한국과 중국간에는 분단상황의 성격과 재결합방식에 차이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같은 객관적 차이성은 중국의 대 한반도정책에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중국이 북한과 형성하고 있는 혁명적이념적 연대성과,중국의 권력구조및 정책결정 과정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중국의 현지도체제는 등소평을 비롯한 혁명원로세력들의 정치일선으로부터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등소평체제의 연속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등소평체제는 장정과 국공내전등 장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지도자들로 이뤄진 최후의 영도체제로서 과거의 정치적 유산이나 이념의 굴레로부터 철저히 탈퇴하기는 어렵다. 등체제하의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이 탈이데올로기화의 추세를 보이면서도 이념적 요소를 전면배제하지 못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등체제가 적극적인 개방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도 이른바 「4항원칙」을 통치의 기본율로 고수하고 민주화개혁에 관한 지식인들의 요구를 전면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잘 반영되고 있다.
중국이 분단극복의 논리로 제시해 온 「1국2체제론」은 연방제가 아닌 단일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통일된 중국에서 대만이나 홍콩은 연방의 구성원이 아니라 단일국가내의 지방정부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통일논리에서는 「2개의 중국」이나 「1중1대」등의 논리는 배격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통일논리는 한반도에서의 「2개의 한국」,즉,한국의 정치적 실체로서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 대한정치관계의 발전및 교차승인등을 가로막는 중요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리고 지난해 6·4천안문사건과 동구의 급진적 변화는 중국사회의 전면적인 수축현상과 집체주의의 강화,이데올로기의 재강조등을 초래해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원칙성을 고수하려는 현상으로 이어졌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결코 지속적인 것일수는 없었던 것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의 권력구조에서의 세대교체는 실질적으로 완성돼가는 단계에 있어 혁명원로들의 영향력은 쇠퇴하고 있다. 이에따라 정책결정과정에서의 탈이데올로기와 「실사구시」적인 현실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개혁개방정책의 진척과 자본주의체제와의 공존의 구체화는 「하나의 중국」논리의 원칙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구에서의 변혁도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공산당영도체제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공산당의 체질과 당영도체제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고있다.
이는 다시말해 공산당이 계급적 배타성에서 탈피,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으로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이루는것을 의미한다. 이에따라 당영도체제는 다당합작제의 실질적 도입을 통해 다원화돼가고 있는 사회의이익 갈등을 적극 수렴하는 방향으로 개선돼 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해방」과 「흡수」란 경직된 개념이 지배하던 통일논리도 상호공존적 개념으로 전환,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만을 상대로 한 중국의 통일논리의 원칙성탈피는 한반도통일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에도 융통성을 가져다 줄것은 분명하다.
즉,자신들의 통일원칙을 한반도 통일문제나 대한관계발전에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는 논리에서 탈피하는 결과를 가져와 중국자신의 행동반경을 넓혀줄 것이란 얘기다.
이상의 논의를 이번 전기침의 발언과 연결해 볼때 이는 중국의 권력구조와 정책결정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이데올로기적 현실주의의 확대추세가 대한반도 정책에도 투영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현재 중국의 강택민체제는 혁명 1세대인 등소평체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공산정권수립 이후에 배출될 혁명 제3세대와의 접촉점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체제가 대내외 정책결정에 있어 현실주의적 경향을 한층 짙게 띨 것은 분명하다. 최근 한반도 정책에서 「이익」 개념의 적용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따라서 중국이 앞으로 자국의 통일정책과 대한반도정책을 기계적으로 연계시켰던 기존정책에서 탈피,두 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 갈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같은 한반도 통일문제의 분리취급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 융통성을 제공,대한관계개선은 물론 교차승인·유엔동시가입등 남북한이 관련된 제반정책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자세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기심의 발언은 단순히 중국통일과 한반도 통일문제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성을 최초로 인정했다는 선언적 차원을 넘어 앞으로의 대한반도정책의 구체적 변화를 예고하는 의미있는 의지표명으로 해석할수 있을 것이다.<외교안보연구원 교수·정박>외교안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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