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주부의 생일」이란 칼럼을 쓴후 생일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그날 아침 대전ㆍ원주ㆍ서울에서 여성 독자 세분이 전화를 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인데 내손으로 생일을 차리기도 싫고,기억해 주는 가족도 없어서 쓸쓸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그중 한 사람은 직장여성이어서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우울하게출근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부 스스로 자기생일을 푸짐하게 차려서 식구들에게 한턱내는 방법이 가장 떳떳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일얘기를하고 나니 독일에 살고 있는 조명훈박사에게 들은그의 50세 생일얘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50살이 되는 생일날,나는 비로소 땅에 발을 딛고 철이 든것 같았다.
「야 조명훈,그동안 고생 많이 하고 많이 헤맸구나」라고 소리내어 말하면서 나는 스스로 대견했고 기분이 좋았다. 그때 나는 독신이었는데 혼자 밖에 나가 시계를 사서 나에게 선물하고,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도주와 장미꽃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시계를 차고 장미로 식탁을 장식하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나는 자동카메라로 50살 기념사진을 찍었다. 며칠후 주변사람들은 50살 생일을혼자지내게 해서 얼마나 쓸쓸했느냐고 미안해 했지만,나는 충만한 기분으로 내 생일을 자축했었다』
한주부는 생일에 대한 느낌을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 칼럼을 읽으며 저는 제생일을 생각해 봤지요. 초여름 5월의 녹색숲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열달 품으셨다가 하늘이 노래지는 산고를 겪으며 낳아주시고 30년동안 길러주시고 이제는 이세상에 안계신 어머니….
생각만해도 지금부터 눈물이 어리면서 뜨거운 감사가 솟구칩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분은 생일날 무조건 행복을 느껴야한다고 선물이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그 사실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칼럼을 쓰고나서 좋았던 것은 올해엔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나와 생일이 똑같은 날인 한 선배님이 벌써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고,여학교 동창들이 번갈아 전화를 하며 오랜만에 내 생일날 모이자고 했고,남편도 내 생일을 잊을까봐겁이나서 여러번 관심을 표시하였다.
몇해전 내 생일에는 친구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신문사 근처인 경복궁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여학교 시절의 추억에 젖기도 했다. 쓸쓸하고 재미있고 스스로 대견했다는 우리 모두의 생일얘기는 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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