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자 부담 1년새 9조 늘어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땅얘기다.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들은 동료들과의 대화기회가 생기면 주변의 일상사 보다는 으레 땅을 사고 파는데로 화제가 돌아가고 가정주부들도 동네에서 만나기만 하면 누가 몇달만에 수천만원을 벌었고 누구는 얼마에 땅을 샀는데 벌써 몇배가 올랐다는 등 온통 땅얘기로 열을 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 은행이나 친지한테서 돈 빌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기에 바쁘다. 재작년만 해도 모이기만 하면 주식얘기로 열을 올리던 봉급생활자나 가정주부들이 이제는 땅얘기에 열중들이다. 옛날에는 몇백만ㆍ몇천만원이 생기면 주식할 궁리들 밖에 안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목돈이 생기면 땅사둘 생각들에 여념이 없다.
부동산 투기가 국민들 속에 파고 들어 일상생활화 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부동산업자들은 부지런히 카메라를 메고 차로 시골 산골짜기로 달려가 물건들(토지ㆍ임야 등)을 찍어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전화로 편지로 엽서로 아무 연고도 없는 집에 닥치는 대로 안내장을 보내 「투자」를 권유한다.
얼마 안되는 증여세를 물어버리고 어린아들 이름으로 땅을 장만해 두는 신종투자도 등장,유행하고 있다.
전국토를 휩쓸고 있는 투기광풍이 몰고오는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사람 목숨까지 앗아간 전월세값 파동을 낳는가 하면 극심한 물가불안과 근로의욕 상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
오른 집값은 그대로 전월세값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집값이 1억원에서 1억5천만원이 됐으니 1억원을 기준으로 한 종전의 전세갑 5천만원도 1억5천만원을 기준으로 7천만원은 돼야 하는 것이다.
해서 1천4백만명에 달하는 세입자들은 오른 전세돈 마련을 위해 은행이나 친ㆍ인척을 찾아다녀야 했으며 돈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은 결국 더 작은집,더 후미진 변두리로 이사를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70년대 일자리를 구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20여년이 지난후,부동산투기 바람에 서울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는 갑자기 몰려든 수요로 인해 덩달아 전세값이 더 오르는 현상을 보여 세입자들을 한번 더 울렸다.
전월세값 폭등으로 세입자들은 1년전에 비해 아주 낮게 잡아도 어림잡아 9조3천억원의 엄청난 돈을 더 집소유자들에게 보증금으로 넘겨줘야 했다.
건설부 통계에 따른 세입자 3백50만가구(인구로는 가족당 4명씩 쳐도 1천4백만명에 이른다)에다 평균보증금을 가구당 1천만원이라고 보고 지난해의 전 월세값 상승률 26.7%를 계산한 금액이다. 이는 지난해 GNP(국민총생산) 1백41조6백33억원의 6.6%.
지난해 국민들이 함께 생산한 부의 6.6%가 보증금으로 무주택자에게서 주택소유자에게로 고스란히 이전돼 버린 셈이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사회계층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그저 자기가 번 돈을 모두 생활비로 쓴다 하더라도 넉넉지 못한 살림에 그중의 상당부분을 집세 보증금으로 내놔야 하니 전월세값 폭등의 폐해는 분배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서 새삼스럽게 지적할 일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1인당 GNP에서는 2만달러를 훨씬 넘어 세계제일의 부국으로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실제 구매력 면에서는 엄청난 집값 전월세값,생활물가 때문에 국민의 생활이 미국의 절반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도 바로 경제의 투기구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동산 투기는 또한 물가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핵심요인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집값이 물가의 척도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땅값 집값의 상승이 전월세값 임대료의 상승을 낳고 뒤이어 전월세값 임대료의 상승이 서비스요금 임금의 상승을 낳는 나선적 물가상승을 유발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집값이 저렇게나 뛰었는데」라는,물가불안 심리를 사회전반에 만연시켜 각종 공산품이나 농산물 등도 덩달아 오르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투기는 또 건실한 생산적 경제활동을 와해시켜 버리고 있다.
국내 유력재벌그룹의 계열사인 A사는 지난해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변에 빌딩을 짓기위해 1천5백평의 땅을 평당 7백만원에서 2천만원씩에 구입 했다. 그런데 최근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땅값은 평당 4천만원씩으로 올랐다. 건축비와 운영비는 임대 보증금으로도 충분하다.
불과 1년 사이에 차익이 3백억원을 넘는데 같은 그룹내의 다른 제조업 계열사는 지난해 노사분규와 수출부진 등으로 2백억원의 적자를 낼 형편이어서 보유주식을 팔아 가까스로 흑자라고 결산했다. 이러니 그룹내에서 제조업 계열사는 무슨 애물단지 처럼 돼버리고 비제조업 계열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게되는게 당연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30대 재벌 그룹들은 앞으로 공개념시행 여신관리의 강화 등으로 땅사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지난해 12월 평소보다 2.5배나 많은 2천6백억원어치의 땅을 사들였다. 당시 경영여건이 어렵다고 한창 경기부양책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설투자를 않고 땅매입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 투기 수익구조를 그대로 둔채 이를 보고 기업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동산 투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강력한 인플레 유발 인자를 경제에 입력해 놓는 꼴이라고 한 경제전문가는 지적하고 있다. 이 인자가 가계나 생산현장 금융기관 등 경제의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구조 자체를 허물어 뜨리고 있는데도 그 인자는 제거할 생각은 않고 물가를 잡겠다든가 생산현장의 의욕을 되살리겠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일시적 대증치료에 불과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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