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동구는 냉전의 벽너머에 있는 나라였고, 그곳에 갈때 우리는 으스스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작년11월 폴란드에 입국하면서 나 역시 공연히 불안했는데 나를 안심시켜준 것은 SAMSUNG(삼성) 글자가 선명한 공항의 카트(짐수레)와 우리말 통역 아니타였다.바르샤바대학은 83년 한국어과를 신설하고 그동안 1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아니타는 그중 한사람이다.
아니타는 평양의 김일성대학에 가서 다른 공산국가의 학생들과 함께 몇달동안 지낸적도 있고,유창하지는 않지만 큰 불편없이 우리말을 할수 있다.
그는 「괜찮다」라는든가 「필요없다」고 말해야 할때 『일없습니다』라는 북한 사투리를 썼으며,그의 우리말 교재는 『위대한 수령…』으로 시작되는 책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서 온 한 선생님얘기를 이렇게 들려주며 웃기도 했다.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었는데 우리 제자들이 문병을 갔더니 선생님은 병원에서 준 환자복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우리는 병원을 나서면서 선생님은 아마 무덤에 갈때도 김일성 배지를 달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북한이 정성을 다해 후원해 온 바르샤바대학 한국어과 졸업생들은 동구에 개혁바람이 불면서 남한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한국대사관,코트라,상사,언론사특파원 등 서울에 온 사람들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폴란드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지의 땅에 진출한 한국인들로서는 그 미지의 땅에 우리말을 할줄 아는 인력이 있다는 것처럼 반가운 일은 없다.
같은 공산국가이면서도 북한의 숨막히는 폐쇄성과 개인숭배에 머리를 흔들어 온 그들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남한과의 관계에 호기심을 갖고,남한에서 진출한 상사 등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후원으로 한국어과 졸업생 두명이 서울에 유학왔는데 모두 그들 두명을 부러워하고 있다.
28일자 한국일보는 이현복교수(서울대 언어학과)가 바르샤바대 한국어과에서 오는 9월학기부터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하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북한과의 연관속에 출범했던 바르샤바대 한국어과가 이제 남한의 교수를 초빙할 만큼 국제정세가 변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교수가 부임하면 그곳 학생들(현재 한국어전공은 8명이라고 한다)은 북한사투리 대신 서울표준말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속에 북한이 공들인 인력을 우리가 쓰면서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남북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서로가 뿌린씨를 서로가 거둘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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