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영악하고 어려워지면 질수록 더욱 기세를 떨치는게 강자의 논리이다. 결국은 힘으로 마지막 승부가 판가름나는 세태인데,반도덕적이면 어떻고 남들이 손가락질 한들 별것이냐며 거침없이 막가는게 「장땡」이라는 발상이다. 그래서 무슨수를 써서라도 싸움에선 이겨야하는 것이고,적이나 자신에게 거추장스런 존재는 거침없이 제거해버리는 하드 보일드의 시대가 태연히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이틈을 타서 소위 반도덕적 처세론이라는 것도 활개를 친다. 강자생존의 지당함을 역설하고 그 몰가치의 수단을 무슨 경세의 대단한 비법이나 되는 것처럼 강변하는 것들이다. 최근 그런 처세론중의 하나를 우연히 훑어보곤 가슴이 서늘해진 기억이 새삼스럽다.
외국사람이 쓴 「사탄의 바이블」이라는 그책은 부도덕한 처세술이야말로 성공의 바이블이라고 강변했다. 그리고 오늘의 세태는 「적극적」이라는 말조차 나약하게 들리게 하는 것이고 그보다 한수높은 「공격적」이라는 것으로도 승자에의 보증서가 될 수 없다고 윽박지르면서,결국은 「악마적으로」 공격적이어야만 승자의 길이 비로소 열린다고 설득했다.
악마적 공격의 수단으로 그 책이 펴보인 내용도 대단했다. 힘의 시대임을 강조하며 「되로 맞으면 말로 갚아라」 「화려하게 훔쳐라」 「마키아벨리즘의 실천」 「혹평과 모함의 연구」 「완전한 권모술수」 「만인의 라이벌시대」 등을 차례로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섬뜩했던 것은 그같은 처세론의 반도덕적ㆍ악마적 강자논리가 단순한 궤변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의 발동이었다.
정부ㆍ여당의 공식방소단 활동과정에서 드러났던 당최고위원과 「실세동행자」간의 불협화 문제만해도 그렇다. 떠나기전부터 「수행이냐 동행이냐」로 국민들보기에 민망한 신경전을 폈었는데 그곳에 가서도 「고르바초프 만나는 사람 따로,대통령 친서 전달하는 사람 따로」의 해프닝마저 연출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공명심과 사명감의 격돌때문인지,아니면 실세의 힘의 과시때문인지 도대체 아리송한 것이다.
증시는 최저시세로 곤두박질,붕괴직전의 빈사상태에 빠졌는데 증시에서 상장기업들이 작년에 증자로 조달한 14조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경제계 분석 또한 우리들에게 의혹을 일으키는 것이다. 봉노릇에 탈진한 소액투자의 개미군단들은 가정불화에서 정신질환까지 겪으며 아우성인데 30대 재벌들은 부동산투자로 큰 재미를 봤다는 또다른 분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돈가진 사람들은 서울시내 23개 대형건물의 등기마저 기피,등록세를 내지 않고있고 수출은 되든말든 내수시장에 1백60여건의 해외의류 브랜드마저 서슴없이 도입했다는 것이다.
힘은 가차없이 뻗치라고 있는 것이고,돈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벌면 그만이라는 오늘의 풍조에서 우리는 가슴아프게도 부도덕처세론의 확산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공권력과 지도력은 최소한 이런 감염이라도 막으라고 있는 것인데… 참으로 걱정도 할일도 모두 태산 같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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