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구시민이 28일 나에게 전화를 걸고 이렇게 말했다.『이번 사태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각에는 바람직하지 못한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끼리,또 TK끼리 싸우는 흥미진진한 싸움을 구경하려다가 구경거리가 날아가버려 실망하는 사람들의 비난은 곤란하다. 잘못을 비판하되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태가 수습되도록 해야지 분열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TK목장의 결투」라는 식의 표현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출신들이 대구에서 출마하여 서로 경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수는 없다해도,이번 선거에 싸움 구경식의 흥미를 갖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6공 2년에 대해 비판적인 야성향의 국민들은 물론이고,사적ㆍ공적으로 권력핵심부에 대해 불만을 가진 여 성향의 인사들도 은근히 정호용씨가 이기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흐름과 관계없이 대구 서갑구 유권자들 중에는 대통령과 여당에 순수한 경종을 울리려는 뜻에서 정씨에게 투표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정씨사퇴에 민자당이 그토록 집착했던 배경에는 정씨의 당선이 상징하고 드러내고 고무하게될 현상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깔려있었다고 생각된다. 정씨를 사퇴시키는 것에는 성공했으나,그로인해 새로운 시련에 봉착하고있는 민자당은 이제라도 자신이 품었던 두려움을 직시함으로써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민자당이 두려워해야할 것은 일개지역 선거구에서의 패배나 그로인한 비판세력의 득세가 아니고,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있는 권위주의와 힘의 유혹이다. 그 유혹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과거의 거대여당들이 어떤길을 걸었던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사태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불길하게 느끼는 것은 국방위의 날치기 소동과 정씨에 대한 사퇴압력이 민자당의 방향을 말해주는 일련의 신호가 아닐까하는 점이다. 3당통합이 그런물리적인 힘을 희구했던 결과이고,이제 힘을 확보했으니 거침없이 나가겠다는 각오라면 그 각오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불길한 예감을 조금이라도 씻고 싶다면 민자당은 지체없이 대구서갑의 동책으로 뛰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철수시키고 ,선거분위기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정씨에대한 끈질긴 사퇴압력과 당력을 기울인 과열 선거운동이 「5공청산」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하고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동책철수에 앞장서야 한다.
개인의 사퇴는 이미 문제가 아니다.
「국방위사태」와 「대구서갑 사태」가 일련의 신호탄이 아님을 인식시키고자 한다면 민자당은 즉시 정상적인 사고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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