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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당한 선거 (장명수칼럼: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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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당한 선거 (장명수칼럼:1358)

입력
1990.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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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씨의 후보사퇴가 나오기까지 대구 서갑구보궐선거의 사태진전은 정치권,특히 여권이 선거제도 자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라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투표라는 국민의 신성한 권리행사를 통해 형성되는 정치권,대통령선거방식을 둘러싼 국민의 격렬한 반발에 6ㆍ29선언으로 굴복하여 기사회생했던 여권이 아직도 선거의 준엄함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대구 서갑구사태이다.정호용씨가 재출마했을때 많은 사람들은 재선거의 원인제공자인 그가 두달만에 다시 출마하는 것은 정치도의의 문제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그의 출마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유권자에게 심판을 맡길수 밖에 없었다.

이 명백한 민주주의 원리를 앞장서서 흐려놓은것은 여권이다. 어제까지 같은 당의 「동지」였다해도 정씨는 이제 법적절차를 거쳐 출마한 엄연한 무소속 후보인데,후보사퇴를 시키기위해 온갖회유와 압력을 가했다는것은 선거방해이다. 그것은 투표를 통해 어떤 의사표시를 하고자했던 유권자들을 무시한 행위이고,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시할수 없을만큼 두렵기 때문에 의사표시의 기회자체를 사전박탈한 행위이다.

아무리 선거구가 3대에 걸쳐 대통령이 나온 여권의 본고장이고,선거양상 역시 여권인사들끼리의 대결이었다 해도,이렇게까지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할수는 없다.

대구 서갑구는 민자당 뒷마당이나 내실이 아니다. 또 개인의 명예ㆍ권위ㆍ의리ㆍ약속 등은 선거의 신성함을 초월할 수 없는것이다.

민자당은 한지역의 보궐선거에 걸맞지 않게 당력을 총동원하여 과열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으나,그보다 더 비난받아야 할것은 선거라는 국가적 행사를 철저하게 사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감정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25일 대구 서도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첫 합동유세에 『나와 아내 단 두표만 나오더라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정호용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는 선관위의 공식발표가 있었을때 학교를 가득 메운청중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조용했다. 우롱당했다는 분노나 야유나 섭섭함을 드러내지 않은채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세장을 떠났다. 「대구시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담보로 잡고 싸우던 한쪽이 어이없이 물러갔을때 대구 시민이 보인 반응은 『그럴줄 알았다』는 착잡함이었다.

저마다 「명예」를 내걸고 버티던 싸움은 「패자뿐인 싸움」으로 끝났다.

이 싸움에서 가장 크게 모독당한 것은 선거제도 그자체였고,담보물로 가장크게 이용당한 것은 대구시민들이었으며,더한층 커진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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