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부터 소련을 방문중인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은 정당차원의 친선외교를 벗어나 한소수교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고 소련내에 대한친선무드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방소기간내내 김최고위원의 얼굴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고 자신감이 충만해 있는 모습이었다.그로서는 반신반의하다 고르바초프를 극적으로 만난데다 소련측의 환대가 매우 은근하니 한소수교가 지척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고 더욱이 수교가 이뤄진다면 자신이 견인역을 했다는 뿌듯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은 「정치인 김영삼」에 집착한 나머지 몇가지 지켜야 할 외교관행과 상식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양국정부가 수교에 임하는 기본노선이 다른 데도 불구,우선 수교부터 해놓고 보자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적극성이 고르비와의 전격회동을 가능케한 요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련정부가 그의 성급함을 「역이용」하려 한다는 점을 김최고위원은 간과하는 듯했다.
김최고위원이 불쑥 총영사관개설합의를 발표한 것이나 민자당과 소공산당교류문제를 제의한 것 등은 우리 국내현실과 외교관례를 무시한 것이란 얘기도 있다. 소련의 과학기술분야 교류및 협정제의를 덜컹 수락한 것도 국제관계조약등을 도외시한 경우였다. 하물며 소련당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까지 「김ㆍ고르비회동」을 비공개로 주선하는 현장에 사진기자를 동행시킨 것은 소당국까지 상식밖의 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최고위원의 오랜 야당지도자로서의 정치경력을 감안할 때 그가 설혹 국내 정계개편의 주역이었고 여권내 신질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래도 여권이 생태적으로 갖는 「기본규칙」에는 익숙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3당통합으로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었지만 그는 「정치인 김영삼」으로서의 자세를 모스크바에서 허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이제 단순한 야당지도자가 아니라 국정의 주요부문을 책임지는 위정자가 되어 있다. 이 사실을 김최고위원은 모스크바에서 잠시 망각했던 것 같다.
김최고위원을 수행한 정부인사및 측근참모들에게도 문제는 없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미수교국인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국가 고위인사들이 겉으로 비치는 우호적 미소 뒤편의 치밀한 계산을 판독할 수 있는 냉정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