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경제이론의 실험무대인가. 조순경제팀의 지지부진했던 개혁실험이 끝나고 새경제팀의 성장실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조순팀의 형평과 복지정책에 복지국가의 꿈에 부풀었던 국민들은 경제가 망가진뒤 등장한 성장팀에 다시한번 기대를 걸수밖에 없게 됐다.
경제정책은 경제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지만 새경제팀 출범이후 조순경제팀 당시와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폭포수처럼 분출되면서 정책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형평과 복지는 성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며「성장만이 살길」이라는 목청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토지공개념과 함께 6공 경제정책의 간판이었던 금융실명제는 실종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수입이 애국」이라고 외쳐댔던 정부관리가 이제는 「수출에 미친사람이 나와야 한다」며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재가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위기에서 탈출」했다는 재벌들은 과거에 엄두도 못내던 실명제유보론을 당당하게 들고나오고 있다.
또 「금리를 내려라」「환율을 올려라」「정책금융을 늘려라」는 등의 무성한 요구를 내놓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때문인지 발등에 떨어진 불인 5백만가구의 세입자를 위한 전세값 안정대책도 실종되고 말았다.
새경제팀의 정책전환은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당연시 될수도 있고 많은 국민의 공감도 받고 있다.
이승윤 부총리의 취임일성처럼 「안정ㆍ성장ㆍ국제수지등 세마리 토끼가 모두 달아나 버린 상황」에서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경제난국을 극복해야 하는것은 너무 당연한 논리이다. 경제성장 없이는 복지와 형평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현실은 과거 70년대와 80년대의 초고속 성장시대와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데 있다.
국민소득 5천달러선인 우리경제의 그릇이 더 커져야 한다는데는 공감할수 있지만 민주화에 따라 분출되는 국민의 욕구와 여론을 수렴,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독과점의 폐해와 부의 편재를 시정하지 않고는 성장의 동인을 회복할수 없는 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정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조순경제팀은 시대적상황에 맞는 확고한 문제의식과 통찰력을 갖춘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의 경제난국은 실명제를 연기하고 돈을 풀고 환율을 올려 수출드라이브를 한다고 해서 돌파구가 마련될수는 없는 실정이다.
경제위기의 근원은 기업ㆍ근로자ㆍ관리등 경제주체가 제몫을 하지않거나 할수없는 상황때문이다.
기업과 경제관료는 제몫을 하지않는 편이고 근로자도 제몫을 할수없는 형편에 가깝다.
오늘날 경제위기를 가져온 수출부진의 큰 원인은 기업이 국제수지로 벌어들인 돈으로 부동산ㆍ주식투자등 손쉬운 돈벌이에 열중한 나머지 기술개발과 생산성향상투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똑같이 환율절상과 고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대만은 생산설비 및 기술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냈다.
반면 국내기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나서 처방을 내놓아 경제회복을 도모했던 타성에 빠져 자체의 개선 ㆍ개혁등 자구 노력에 앞서 정부의 시책에만 의지해왔다.
새 경제팀이 이같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울 정책을 제시하고 근로자등 저소득 계층의 보상을 외면할 경우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몰아갈수도 있다.
새 경제팀이 수출과 경기부양을 위해 제시할 경기부양책이 기업과 재벌에 대한 특혜로 이해될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정의를 위해 제시한 개혁정책이 피부에 와 닿기전에 후퇴하고 치솟는 전세값으로 인한 근로자등 저소득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무엇으로 치유해주어야 할것인가.
올들어 근로자들의 자각과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노사분규가 진정되고 있는데 근로자에 대한 보상없는 부양책과 개혁조치의 후퇴는 노사분규를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6공정부가 출범하면서 형평과 복지의 기치를 내걸고 자본주의 경제제도하에서 혁명적이라는 제도개혁이 추진되었다. 또 이길만이 또다른 혁명을 막을수 있는 방안임이 강조되었다.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서 재산및 금융소득자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두어 복지재원으로 활용하자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것이다. 다시말하면 가진자가 양보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정책전환기에 나타난 양상은 가진자가 기득권을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질수 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정책기조의 급격한 전환은 소득계층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소지가 크다.
3공ㆍ5공시대와 같은 낡은 성장정책으로는 오늘의 경제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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