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조금씩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지난해 한국은행법 개정논의 때 실감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법을 고치지 않는 대신 관행으로라도 한은의 독립적 위상을 강화시켜 준다는 단서가 남아 혹시나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최근 개각을 전후로 해 시중에 한은총재의 경질설도 함께 떠돌아다니는 데 대해 한은의 한 간부는 암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털어놓았다. 관행의 개선이라고 말로는 선언해 놓고 규정상 임기 4년이 보장된 한은총재를 예의 「경제팀의 일원」이므로 갈아야 한다며 후임자가 P씨인지,K씨인지,H씨인지로 기울었다고 흘러나오니 「세상어렵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앙은행총재의 임기보장은 단순히 한은사람들의 불만차원을 떠나 통화운용의 탈정치 바람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조항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구의 잘사는 나라들은 한결같이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를 법으로나 실제로나 철저히 보장해주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법으로는 일찌감치 이들 나라를 따라잡아 중앙은행총재의 임기를 보장해 주고 있다. 문제는 실제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역대 한은총재중 17대를 내려오면서 임기를 온전히 채운 사람은 딱 3명. 2대 김유택총재,9대 김세련총재,11대 김성환총재 등. 나머지 사람들은 극심한 정치바람에 휘말려 심지어는 수개월만에 총재직에서 물러나는 사례까지 있었다.
정치권력의 이같은 갈아치우기에 의해 일반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툭하면 갈아치울 태세니 선거 당사자도 당사자려니와 불황기엔 돈을 펑펑 안풀 재간이 없고 그로 인한 인플레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왔다.
새바람을 위해선 경질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아예 임기제를 폐지하든가 해야지 임기제를 그대로 두면서 경질하는,명목과 실질이 따로따로 노는 폐해만은 없애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앙은행총재를 자꾸 갈아치우는 나라치고 경제가 잘 되는 나라 없고 맘에 안들어도 임기를 보장하는 나라치고 못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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