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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지방의원의 충고(이성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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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지방의원의 충고(이성춘칼럼)

입력
1990.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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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여야중진의원들과 일본정계를 시찰하러 간 길에 일본지방자치의 모범지역의 하나라는 삿포로(찰황) 시의회를 둘러보기로 했다.먼저 시집행부쪽의 얘기를 듣기 위해 삿포로 시장을 방문했다. 60대 중반의 복덕방 영감같은 구수한 인상의 시장은 시정운영 상황과 시의회와의 관계를 설명한 뒤 우리들이 시의회에 들른다고 하자 『제발 그 사람들(의원들)을 만나면 다음번 시장선거때 나를 제외시키도록 얘기좀 잘 해달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원래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그는 시 개발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 시장직을 3차례나 연임하고 이번 선거에는 극력 고사하는데도 공산당까지 모든 정파가 전폭지지하여 꼼짝없이 4선을 하게 되었다는게 비서의 설명이었다.

이어 시의회를 찾아 휴회중이지만 마침 의원사무실에 들른 자민 사회 공명 민사 공산 등 각당과 무소속 의원들과 간담을 가졌다. 그들은 저마다 『비록 소속정당은 다르지만 시민 이익과 시발전에 정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 뒤 『시장영감한테는 개인적으로 안됐으나 시개발사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연임으로 그의 발목을 이번까지 잡아두는 수 밖에 없다』고 사퇴는 어림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접한 북해도의회까지 둘러본 뒤 그곳 시ㆍ도 의원들과 오찬을 할때였다. 초청자측 대표가 일어나 『이웃나라 손님들에게 우리고장의 지방자치발전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다카하시(고교) 선생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다』면서 옆자리의 노인을 가리켰다.

8순의 그 노인은 2차대전 전에 재임했던 다카하시 수상의 손자로서 정의회(우리의 동에 해당) 의원에서 출발,근 40년간 시도 의원으로 줄곧 재임해오면서 지방자치의 백과사전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지방의회는 정치지망생들의 훈련장 아닙니까. 선생은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출신으로 중앙정계 진출의 기회가 많았는데도 물리치고 평생 지방의회를 지켜 오셨습니다』라고 초청자 대표는 덧붙였다.

다카하시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치란 뭐 어렵고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사회,국가를 위한 봉사이지요. 나는 수십년동안 부질없이 정쟁만 일삼는 중ㆍ참의원에 가지않고 오직 지방의원으로 고장발전을 위해 조그만 봉사를 해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 선거구를 젊은 후진에게 물려주고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막바지에 필자가 노의원에 오랜 경험과 관련,지방자치의 역할과 중요성을 묻자 그는 『오늘날 일본이 선진민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지방자치가 활발하게 운용됐기 때문이지요.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이 아직까지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하면 우울해 진다.

헌정 42년간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법과 제도처럼 기구한 역정을 거치고 또 구박을 받아온 제도도 없을 것이다.

저의는 어찌됐든 전쟁중을 포함하여 자유당과 민주당정권이 52ㆍ56ㆍ60년 등 3대에 모두 8차의 각급 지방선거를 실시한 것은 귀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달동안 4차례에 걸쳐 지방의원과 단체장 선거를 실시한 60년 12월의 지방선거중 서울시장선거에 있어 우리나라 선거사상 처음으로 투표지에 한글 또는 한문으로 이름을 기재케 한 것은 획기적인 실험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지방자치가 5ㆍ16쿠데타로 하루 아침에 싹이 잘리고 말았다. 혼란과 낭비를 막는다는 이유였다.

이때 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지방분권화 정치인 훈련 국민주권의식 신장 민주발전의 초석이 되는 지자제는 역대정권의 권력유지의 편의에 따라 갖가지 이유로 외면 당하고 실시가 연기되어 왔다. 집권자는 선거때마다 실시를 공약하고도 식은 죽 먹듯 위약하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헌법부칙에서 「실시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한 박정권 시절에는 정치적 혼란과 빈약한 재정자립도를 이유로 국민소득이 3백달러를 넘게되는 70년대에 들어서서나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을 72년 유신헌법에선 아예 「조국통일이 이뤄질때까지 구성하지 않는다」(부칙10조)고 못박았다.

5공시절엔 헌법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여 수년내에 실시할 듯 했으나 실시할 생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차 공세를 취하는 야당을 쓰다듬기 위해 84년 순차실시를 다짐했던 약속 역시 손바닥 뒤집듯한 것이다. 6공출범 후 국민들은 이제야 하며 한가닥 기대를 걸었었다. 선거공약인데다 12대 마지막 국회에서 여야는 89년 4월말까지 지방선거를 실시하기로 관계법을 속결통과 시켰지만 작년 봄 인기와 정파이익경쟁에 몰두했던 1노3김이나 어느 정당하나 위약에 대해 사과성명 한번 낸 적이 없다.

작년 후반 1노3김이 또다시 「90년 상반기까지 지방의회 선거,91년 상반기까지 단체장 선거」를 합의,약속했을때 국민들은 솔직히 말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결국 실시약속시한을 3개월여 앞두고 여야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선처리 하겠다며 소집한 국회에서는 지방선거법을 정쟁1급상품으로 삼아 통과를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대로 기대를 걸었던 국민입장에서는 또 한차례 배신을 당한 것이다. 지방선거법 처리가 보류된데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두말 할 여지없이 거여인 민자당이 져야하지만 그토록 중요하고 시급한 이법을 다른 정치법안과 연계시킨 평민당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후보의 정당추천제와 국회의원 등 선거운동 허용여부도 결코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지난날의 지방선거 경험과 외국예를 고려하여 부분채택 등으로 절충할 수 있지 않은가. 도대체 여야 모두 그토록 국민이 기다리는 지방자치를 정말 실시할 의지와 생각이 있는지 묻고싶다. 민주화 운운하지만 가장 구체적인 민주화의 성과는 지방자치 말고 무엇이 있는가.

여야는 위약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정치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하고 지방자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갖고 있다면 5월까지 기다릴 것 없이 4월에 국회를 다시 열어 지방선거법을 통과 시켜야 한다.

여야가 지난날과 같이 정략적인 계산과 편의에 의해 지자제를 이용하고 또 마냥 늦출 경우 앞으로는 아무리 민주주의 민주정치를 운위해도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지방자치를 위해 평생을 보냈던 다카하시 노의원의 경험담과 충고가 새삼 떠오른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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