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면 만나게 된다』고 선인들은 어떤 절망속에서도 위로를 잊지않았는데,남북으로 헤어져 있던 한가족이 40년만에 만나는 모습을 보며 그말을 실감하게 된다.신혼 시절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간 남편을 한평생 기다려온 김선순씨(62),그때 임신중이었던 아들 손경한씨(40),북으로 넘어가 다시 결혼하여 6남매의 아버지가 된 손영종씨(63)… .그러나 상봉의 순간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담담했다.
그들의 상봉은 절제되고,격정이 드러나지 않고,「정치」가 개입될땐 야속할 만큼 차가웠다. TV로 그들의 상봉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몇가지로 추측해봤다.
첫째 의견은 북한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인 손영종씨가 지식인이고 「강철같은 공산주의자」여서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성격을 키워왔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는 『부인과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누구에게 미안해할 일도,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닐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은 사회과학도답게 정확하지만,유복자나 다름없는 외아들을 키우며 40년을 홀로 살아온 아내를 생각할 때 비인간적으로 들렸다.
두번째 의견은 그를 끊임없이 긴장케 하는 체제의 압력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점은 앞서 오빠와 상봉한 한필화씨의 경우도 불필요한 북의 선전과 정치적 발언이 튀어나올때 마다 짐작할 수 있었다.
셋째는 그들 가족의 절제된 만남이야말로 바로 어제까지 우리나라의 가족이 서로를 대하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서양식 포옹과 원색적인 감정분출이 어느덧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들의 자제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읍니다』라고 40년만에 만나는 부모사이에서 아들 손경한씨가 말할때,『그전에는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이 무척 야위어서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아내 김선순씨가 말할때 이산의 한을 안으로 삭인 한국가족의 그윽함이 돋보였다.
그것은 「미안해할 일도 원망할 일도 아닌」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삭여 울고있는 모습이었다.
「냉정한 아버지」는 자신이 매고있던 허리띠를 풀어 아들에게 주었다.자신의 허리띠를 아버지와 바꿔맨 아들은 이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아닌,아버지의 실체를 그리워 할 수 있게됐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필성ㆍ손경한씨의 가족상봉을 계기로 정부는 월북자ㆍ납북자를 구별하지 않고 제삼국에서의 북한가족접촉 신청을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제삼국에서라도 다행한 일이지만,당연히 국내에서의 상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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