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성장책 답습은 곤란/투기ㆍ실업등 구조적 난제/부양책만으론 치유 못해/여건변화따른 구체적 새대안 나와야경제정의와 제도개혁을 부르짖었던 조순경제팀이 물러나고 그 경제팀의 시책 전반에 대해 줄기차게 불만을 토로하면서 강력한 반대를 해왔던 이승윤부총리가 새경제팀을 이끌고 등장했다. 벌써부터 시중에는 정부의 경제시책이 안정위주에서 성장위주로 일대방향전환을 하면서 새로운 시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애기가 널리 퍼지고 있으며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들은 환영일색의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실명제를 비롯한 개혁적인 제반시책들이 연기 또는 대폭 완화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기대감속에 고액금융자산 보유자들과 대다수 기득권계층이 오랫동단 시달리던 불안감에서 벗어나 안도하는 표정들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도 그동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반성을 촉구하면서 몰아세우던 정부가 기업의 아픔과 고충을 이해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갑자기 활기를 띠는 듯한 모습들이다.
이승윤신임부총리는 『성장이냐 안정이냐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곤란하다』고 단서를 달면서『굳이 슬로건을 내걸라고 한다면 성장속의 형평 또는 성장속의 개혁』이라고 얼버무리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성장에 중점을 두겠다는 명백한 의사표시를 피하지는 않았다.
이부총리는 성장과 안정,국제수지(대외균형)등 3마리의 토끼외에 형평이라고 하는 한마리의 토끼를 더 잡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라면서 그러나 현실적으로 4마리의 토끼를 다잡을 수 없고 불가피하게 하나만 쫓아야하는 형편이라면 그것은 성장일수 밖에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성장만되면 나머지 3개의 목표는 쉽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이부총리의 생각이다. 또 『빠른 시일내에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 『금리인하등 구체적 대책은 협의를 거쳐 처리하겠다』고 말해 성장우선을 말로 강조했을뿐 아니라 실제 행동을 위해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실명제에 대해서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강조하면서 『신중히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하겠다고 이미 정부방침으로 확정ㆍ발표한 것을 『신중히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곧 연기 내지 대폭완화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 밖에 없다. 새 경제팀이 출범하는 첫날부터 이처럼 성장우선과 실명제 재검토를 분명하게 밝히고 나섰으니 정부 경제시책의 일대 방향전환은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방향전환만으로 그동안 제기된 우리경제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책의 방향선회에 대한 예상만으로 벌써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기업들과 자산계층등 상당수 국민들이 실제 만족할 수 있을만큼 여러가지 어렵게 꼬여있는 문제들이 술술 풀려나갈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수출부진과 투자위축,경기 고용 물가 국제수지 투기등 만신창이가 돼있는 우리경제가 그동안 성장우선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하지 않았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이렇게 된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요인들이 얽혀 수렁에 빠져든 경제를 정책의 방향전환만으로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부총리는 그동안 정부시책에 대해 꾸준하게 비판ㆍ반대를 해왔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아왔다. 『성장우선으로 나가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새로운 성장전략(3공시대의 낡은 방식과는 다른)을 내놔야 하고 조순전부총리가 수없이 되풀이해서 말했던 성장과 안정의 동시추구나 『안정속의 성장』을 똑같이 되뇌어 성장속의 형평이니 성장속의 안정이니 하는 말을 슬로건으로 삼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러 이러한 시책을 하면 안정도 되고 성장도 될 것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시책을 내놔야 하는 것이다.
업무파악을 한다음에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은 신물나게 봐온 구태다. 알만하면 그만두곤하는 각료들 때문에 시책은 계속 겉돌았고 경제가 실험의 대상이 돼서 표류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새 경제팀의 성장우선론은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 성장을 하면서 형평을 추구하겠다는 것도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고 환율을 올려 수출드라이브를 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것은 옛날방식으로 이제는 효험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새 경제팀이 한쪽에서 기대를 모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 걱정을 사고 있는 것은 낡고 묵은 성장론을 그대로 들고 나와 투기열풍에 물가폭등ㆍ분배구조의 악화ㆍ경제력집중등 오히려 경제를 더 병들게 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성장에 중점을 두고 실명제를 연기한다고 해서 회생될 수 있는 경제가 아니기 때문에 새부총리 입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대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던 것이다. 그러나 신임 부총리의 개구일성은 낡은 성장론의 체취를 물씬 풍기는 내용이었다. 사람도 그사람,시책도 헌칼 그대로라면 개각은 하나마나한 것이 될 것이다.【박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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