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집사람 때문에 힘 얻어” 피력/88년 광주특위 증언때부터 함께 수난/“대통령께서 한번 봐주셔야” 심경 토로정호용씨 부인 김숙환씨의 자살기도소동은 정씨가 정치인으로서 격동의 세월을 보내온 동안 가정생활도 큰 수난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씨는 광주문제와 관련해 지난 88년 가을 국회광주특위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증언하는 것으로 첫수난을 기록한 후 지난해 1년여간 의원직사퇴파동에 시달린 뒤 오는 4월3일 실시되는 대구 서갑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인이 자살을 기도한 사건을 맞은 것이다.
36년간의 군생활을 통해 육참총장을 지낸 4성장군에 내무ㆍ국방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길을 걸어온 정씨는 13대 국회의원에 당선,첫 1년은 순탄히 보냈다.
그러나 6공정부가 5공청산작업을 본격화하면서 정씨는 여야압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러가지 정치적 비애와 인간적인 모멸을 맛보아야 했다.
정씨의 수난은 그의 가족들에게도 2년여동안 정신적 고통을 주어왔다고 보여진다.
정씨가 지난 88년 가을 광주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후 서울 과천자택에 빗발친 협박ㆍ항의전화에 이어 여의도의원회관 사무실에 화염병이 날아들면서 정씨가족은 외부출입을 자제하는 등 남모를 고통을 겪었다.
청문회열기가 서서히 식으면서 정씨와 그의 가족들은 정상을 되찾는 듯 했으나 이도 잠시. 지난해 봄, 정치권에서 의원직사퇴문제가 본격 제기되면서부터 정씨와 가족들은 또 한차례 「우울한 가정」이 되었고 정씨 사퇴문제가 정치권의 최대이슈가 된 지난 가을에는 생이별을 하는 비애를 맛보기도 했다.
이때 정씨는 과천자택을 떠나 호텔과 친지집을 전전했고 의원직사퇴파동이 최고조에 달했을때는 모기관이 감시와 미행을 해 그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혔고 부인과 가족들도 심한 불안감에 휘말렸다는 것.
정씨 부부는 이들을 따돌리느라 미 8군영내와 친척집으로 피신하느라 분주했다는 것.
결국 정씨는 지난해 연말 의원직을 사퇴한 뒤 부인과 함께 용평등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외부인사와 접촉을 꺼려왔다.
그러나 그는 3당통합후 민정당이 해체되자 구민정당핵심당원과 서명파의원 등 친지들이 『민정당간판이 내려졌고 정계개편이 된 이상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며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출마를 적극권유해 왔다. 이들의 권유가 잇따르자 정씨는 정치재기를 구상해 왔고 부인도 적극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월초순께부터 외부기관의 감시와 미행은 대구현지에서까지 재연됐고 자신을 지지하는 핵심인사들에 대한 유형무형의 압력을 직간접으로 전해 들으면서 누적된 감정이 또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측근들이 전하고 있다.
정씨 부부는 지난 9일에는 서울로 올라와 여권요로에 거친 항의까지 전달하고 돌아갔다.
따라서 정씨의 부인이 자살을 기도한 것은 2년여동안 수모를 당한 격앙된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변에서 분석하고 있다.
정씨는 사퇴과정과 무소속출마 등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면서 부인과 네딸들의 의견을 항상 들었고 부인 김씨는 늘 강경입장을 개진하는 등 집안에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씨 부부는 최근 서명파일부의원들과 만나 여권의 불출마종용에 언급,『이번에는 노대통령께서 한번 봐주셔야 할텐테… 』라며 자신의 무소속출마만은 양해해 주기를 기대하는 인간적인 호소를 했다는 것.
정씨 부부의 이같은 심경과 인간적인 신뢰에 대한 불신등이 증폭돼 왔다는 측근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때 부인의 자살기도는 2년여에 걸친 정치적 수모와 군인가족으로 체험하지 못한 정치세계의 냉혹감,인간적 배신감 등이 한꺼번에 표출된 결과라고 풀이 할 수 있다.<대구=장현규기자>대구=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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