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국회가 여러중요 안건을 날치기로 처리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지만,지난 12일 국방위의 국군조직법 개정안 기습통과는 한층 더 한심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의 첫반응은 『저런짓을 하고싶어서 3당통합을 했단 말인가』라는 한탄이었다.민자당의 출현이 아직 어색하기만 하고,여소야대의 구도가 왜 하루아침에 여대야소로 바뀌어야 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방위의 이번 처사는 우려와 실망을 더해주고 있다. 여소야대국회의 비능률에 짜증이 나서 획기적인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사람들도 이런식의 「능률」 앞에서는 할말을 잃고 있다.
어떤 신문은 군출신인 유학성국방위원장이 군조직법개정안을 군대식 작전으로 처리해 버렸다고 꼬집었고,기습처리 후 민자당일부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보도도 있는데,정치가 작전으로 이해되고 있다면 큰일이다. 거대여당이 실력행사로 정국을 주도하려 한다면 소야역시 실력행사로 강경대응에 매달릴수 밖에 없고,그런식의 정치는 온국민이 다시 꾸고 싶지않은 악몽이다.
민자당 출범이후 처음 열린 이번 임시국회는 25일의 회기중 20여일이 흐르도록 어떤 긍정적인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와 야는 모든 현안들에 대해 대립으로 일관하고,3당통합을 둘러싼 비생산적인 공방전은 국민을 피곤케 할 뿐이었다.
만일 이번 국방위의 처사가 이번 회기중에 거대여당의 힘을 과시하고,타협과 협상이 불가능할때는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발상이다.
평민당이 군조직법개정안의 회기내통과를 완강하게 반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국민은 「타협과 협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인식하지 않으며,무엇보다도 왜 이런식으로 쫓기듯 군조직법개정안을 처리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가 어떻게 부당한가를 국민에게 납득시키려면 여당은 찬반토론을 충실하게 진행해야 할텐데,찬반토론도 없이 의사봉까지 야당의원에게 뺏긴 채 주먹으로 책상을 쳐서 가결을 선포했다니 유위원장이 무엇에 쫓기고 있었는지 우리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만자당이 뒤늦게 김영삼최고위원 등의 문제제기로 유위원장의 변칙처리를 문제삼고,이번 임시국회에서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자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이 벌써 다수의석의 유혹,날치기의 유혹에 빠졌음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이런일을 하려고 3당통합을 했나?』란 말과 함께 『조금있으면 별관으로도 가겠군』이라고 비꼬는 따가운 국민의 눈총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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