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상오 8시 전남 나주 황토밭에서 트랙터 4대가 무밭을 갈아엎어 무들이 속살을 허옇게 드러내며 나뒹굴었다.인근밭에도 버려진 무들이 이랑마다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1년간 땀흘려 지은 농작물을 자기손으로 갈아엎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저장무밭 2만평중 1만평을 갈아엎은 김택출씨(49ㆍ나주군 왕곡면 행전리)는 『기가 막힙니다. 소중히 간직한 무를 버린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져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라며 허탈해했다.
이번 무 폐기작업에 주동이 돼 행정당국의 눈총을 받고있는 김태근씨(47ㆍ호남지역 채소재배영농회장)는 『11일 새벽 드디어 오늘 무를 갈아 엎는구나 생각하니 말문이 막혀 전화를 받지 못하고 한참 울었습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민들은 항상 속는 게 야속합니다. 농협구판장에 가면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없고 과자ㆍ음료수 등 인스턴트제품 일색입니다. 땅콩 포도 복숭아 등 대체작물도 재배해 왔지만 수입자유화로 판매가 안되기 때문에 무와 수박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고 과잉생산만 탓합니다』 김씨의 분노의 소리는 끝이 없었다.
야산 10만평을 개간,14년간 무를 재배해 온 김씨는 어엿한 기업농으로 성장,집안엔 「농민의 훈장」인 농어민대상 농협 새농민상 모범농가상 등 상장ㆍ상패가 30여개나 자랑스레 걸려있다. 그러나 대대로 농사를 지어 보람을 찾겠다며 농민임을 자랑해오던 김씨는 『이제 두 아들만은 절대로 농사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전남도와 나주군에선 한번도 현지에 찾아가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가 12일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뒤늦게 반출시 농협차를 지원하겠다는등 대책을 발표했다.
12일 나주군 왕곡면 황토밭일대는 전날 내린 비에 씻긴 무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실종된 농산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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