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가서 몇년 살다가 온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도착한 후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때 그는 문득 자기 자신이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그것은 아무도 뛰지않는 거리에서 혼자뛰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잡을때도 뛰고,버스가 와도 뛰고,길을 건너갈때도 뛰던 사울에서의 오랜버릇을 고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그는 말했다.그의 이야기를 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나 자신이 거리에서 공연히 뛰는 때가 많고,그 버릇을 지금까지 고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가야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성격이 유난히 급한편도 아닌데,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뛰어건너는 식으로 줄달음을 치곤한다. 내가 왜 이렇게 뛰고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 뛰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고,옆에서 나처럼 공연히 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걸어야 할때 뛰는 것은 확실히 비정상적인 것이다. 오늘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조급증,쫓기는 듯한 강박관념에 젖어있다. 조급증과 강박관념으로 온국민이 앞만 보고 뛰었기 때문에 오늘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는 진단도 있고,또 그것은 상당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우리는 뛰어야 할까.
조급증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뛰지않고 걷는 것일 것이다. 운동을 하러 야외에 나갔을때 20분동안 뛸것인가,1시간반동안 걸을 것인가를 묻는다면 뛰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뛰는 사람이 더 건강할 것 같지만,묵묵히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심신이 훨씬 더 건강하고,마음이 깊고,여유와 끈기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산보하는 습관이 익숙하지 않은데 그것은 몇시간씩 걸을 만한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대도시주변에도 산보할 만한 곳이 많고,직장인들도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서 사무실주변을 걷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허리에 만보기를 차고있는 직장인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데,만보기의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한국인의 걷는 양이 늘어나는지는 의문이지만,걷는 일에 그만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이제 뛰지말고 걷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모두가 공연히 뛰는 집단조급증에서 벗어나 한사람 한사람이 고독하게,조용하게,사려깊게 걷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걷기는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도 가장 효과가 좋아 많은 나라에서 걷기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다. 봄이 오는 산과 숲으로 나가기 어렵다면,우선 버스나 택시를 타던 짧은 거리를 걷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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