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한 밤 아파트의 창문들이 특유의 둔탁한 충격파와함께 「평」하고 뒤흔들리면 『또 「검은새」가 나는 구나』하고 모두들 생각했다. 그 「검은새」가 등장하는 것은 으레 한반도정세가 북측의 도발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을때와 일치했다. 그러고 며칠지나면 어김없이 북측은 판문점에서 『미군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억지를 부렸고 우리측은 『공해상을 날았을뿐』이라는 간단한 응수가 뒤따랐었다.판문점을 오래 출입한 기자들은 그동안 북측이 가장 싫어하는듯 느껴졌던게 남쪽으로부터의 자유의 바람과 그들의 흉계를 샅샅이 살펴온 「검은새」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반도 대결정세의 지속에 따라 우리에게 그 음속돌파 충격음으로나마 익숙해졌던 검은새가 이제는 지난 25년간의 천수를 다하고 드디어 퇴역한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북의 도발을 감시해온 활약상에 비해 너무나 간결한 퇴역보도가 새삼 우리에게 엄청나게 달라진 세월을 실감케 한다.
그 검은새란 물론 총알보다 빠른 천리안임을 자랑했던 미국의 초고공 정찰기 「SR71」이다. 샘미사일에 격추된 U2기의 뒤를 이어 지난 66년부터 활약해온 이 정찰기는 미국항공기술의 정수를 집약한 것으로 최대속도가 음속의 3배를 넘는 미하3ㆍ5에 27㎞의 초고공을 날았다. 초고속에서의 고온에 견딜 수 있게 기체의 대부분이 티탄합금으로 되어 있었고 무게77톤의 거구에 색깔도 검은 색이어서 검은새(블랙버드)라는 별칭을 얻었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검은새의 정찰 능력이었다. 불과 1시간의 비행으로 남북한 면적보다 넓은 무려 26만㎢를 정찰할수 있었고 엄청난 고공비행능력으로 휴전선 상공에서도 북한을 굽어볼수 있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한반도를 비롯,소련ㆍ중국ㆍ베트남ㆍ쿠바ㆍ중동 등을 정찰비행하면서 1천번 이상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 공격을 모두 따돌린 탁월한 능력이었다.
지난 81년 8월 검은새의 존재를 눈의 가시처럼 여겨오던 북한측이 한반도주변 공해상을 비행하는 검은새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으나 조종사가 이를 감지,미사일이 수마일이나 빗나가 실패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의 검은새는 오키나와 기지에 상주하면서 밤낮으로 활동하던 4대중의 하나로 정례정찰중이었는데,북측은 격추불능임을 알면서도 한반도 긴장조성을 위해 공격을 기도했던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같은 검은새의 퇴장은 공산권의 자유화바람으로 긴장이 완화된 달라진 시대와 정찰 인공위성의 엄청난위력등 두가지 때문이다. 미국방부는 8대로 추정되는 검은새의 퇴역으로 연간 3억달러의 예산절감 효과를 볼수 있고, 그 정찰기능을 인공위성이 훌륭히 대신할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4반세기의 온갖 긴장과 풍상을 모두 묻고 박물관의 한갖 전시물로 전락하게된 검은새의 운명에서 우리는 새삼 달라진 세월을 절감하고 한반도의 운명을 또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검은새가 우리주변을 감돌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은 대결과 점증하는 긴장만 있었을뿐 통일과 평화의 기대가 어둡기만 했던 때였다.이제 그 검은 새도 세월에 밀려 나래를 접는다니 아직도 대결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속의 검은새들 마저 한반도에서 아울러 퇴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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