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한다고 하면 화끈하게 그것도 이왕이면 최고,초호화를 선호한다. 그렇지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일까.우리민족성을 말하지말자.그래 우리사회에서 「새사회병」으로 일컬어진다는 혼수문제 또한 예외는 아니다. 부산에서 50대중년부부가 딸의 혼수빚을 값지못해 하루건너 자살을 했다. 13평짜리 두칸방에 전세든 개인택시기사 부부의 이 애화는 딸가진 소시민들에게 남의 일만같지는 않을 것이다. 3년전 큰딸을 시집보내면서 혼수비용으로 진 빚1천만원이 이자때문에 일수돈까지 겹쳐 원금의 5배로 불어난 것이 자살동기라고 한다. 혼수를 둘러 싸고 신혼부부들간에 불화ㆍ고소제기,심지어는 이혼사태까지이른 사례들이 심심찮게 사회면 기사거리로 등장하는 세상이다.
지난해 11월 강남에 자리잡은 H백화점에서 벌어진 촌극.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국가대표급 남녀탁구선수가 혼수감을 장만하려 쇼핑을 갔다. 그들의 애틋한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고관의 부인도 동행했다. 일행이 도착하기 한시간전부터 백화점 사장을 비롯,임직원들이 미리 나와 대기했단다.백화점측이 마련해준 대형혼수는 시댁식구들에 대한 예물 예단 가구 가전제품 침구류등 자그마치 60여종을 넘어 총1천5백72만3천7백원어치. 이들 혼수품은 모두 H백화점에서 무상으로 제공했다는게 대충 신문기사의 스토리다.
어느 조간지에 난 이기사를 읽고 무언가 개운치않은 느낌을 받은 독자들이 적지않은듯 하다. 핑퐁을 통해 사랑의 열매를 맺은 젊은 두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주고자 재벌이 경영하는 백화점이 혼수감쯤 희사했다고해서 저항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주위에서 더 비싼것,보다 좋은것들을 권유했다는 이야기다. 행여라도 백화점측이 동행한 사람의 세도를 의식해서 공짜로 준것이 아니기를 바랐을 뿐이다.
우리사회에는 예부터 『딸 셋을 시집보내면 기둥뿌리가 휘청거린다』는 속담이 있다.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가 그토록 예물ㆍ예단에 정성을 쏟고 그때문에 엄청난 부담을 느껴왔다는 풀이일것이다.
가정형편이 웬만하면 일생에 한번 시집가는 딸의 혼수를 잘해주고자 하는 부모욕심은 인지상정이이리라.
반대로 『겉보리 서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한다』는 옛말도 있다. 대장부사나이가 처가신세를 지면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게 마련이며 오죽못났으면 「처가살이」를 하겠느냐는 핀잔일지 모른다. 분수에 알맞게 장만해가면 미풍양속이 될 혼수도 도가 지나쳐 호화ㆍ과다로 치달으면 무절제ㆍ과소비ㆍ사치로 지탄받게 되는 모양이다. 더구나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을 통해 한밑천 잡겠다는 발상을 갖는다면 그건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일이 아니다. 호화ㆍ과다혼수풍조는 지난 70년대 이후 우리사회가 급속히 산업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졸부들의 과시욕 때문이라는 혹평이 없는것도 아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얼마전 발표한 혼수실태조사에 따르면 총결혼비용으로 남자가 평균7백55만원,여자는 1천5백57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5개 대도시의 경우 결혼비용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남자 4천3백50만원,여자 7천6백만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하나 부유층ㆍ일부중산층의 가정에서 그보다 더 많은 결혼비용을 쓴 사례가 적지않다는 것은 부인못할 현실이다.
학력이 낮은 신랑ㆍ신부보다 고학력의 신혼부부가 훨씬 비용을 많이 더쓴다는 통계결과도 씁쓸하다. 해방후 무에서 오늘의 유를 창출해낸 부모세대가 못가져본 금딱지롤렉스시계ㆍ밍크코트를 젊은이들이 당연한 일처럼 혼수감으로 요구하는게 과연 잘된 일일까. 부유층이 솔선수범한(?) 탓인지 이런 폐습은 지금 중산층ㆍ서민층에까지 만연,정말 『가랑이가 찢어질 줄』 뻔히 알면서 『뱁새가 황새걸음』을 걷는 것이 요즘 세태인것만 같다.
새로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 세대가 갖출것을 미리 모두 겸비해 버린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직장의 월급쯤,가벼운 용돈으로 착각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호화혼수말이 났으니말이지 우리주변의 과소비ㆍ과공의 풍조또한 우려할만한 병폐이다. 일류대형백화점에 가보라. 흡사 사치품의 경연장처럼 꾸며져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상품이 즐비,외국에 간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소비행태가 경쟁적으로 고급사치화,구매심리를 크게 자극하고 있다면 걱정이다. 사치성 과소비 현상이 최소한 중산층이상에는 폭넓게 펴져있다는 증거이리라.
6공들어 북방외교가 커다란 정치이슈가 되고 있다.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소련ㆍ동구ㆍ중국을 방문하고 현지에 경제원조적 성격을 띤 소비재 생산공장을 짓겠다고 공약한다. 국민소득이 이제 갓 5천달러미만의 한국이 계수상으로는 적어도 우리보다 위에 있는 동구권을 돕겠다는 발상을 한번쯤 재고해볼 필요는 없는가.
86년의 서울아시아경기대회 「88서울올림픽」때 지나치게 동구권을 후대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중국이 오는 9월의 북경아시아경기대회를 위해 한국의 원조를 은근히 기대한다는 소문마저 들리고 있으니말이다. 『과공은 비례』라는 중국의 격언이 왠지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 작금이다.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방소단 문제만해도 그렇다. 정식수행원 10명외에 10여명의 비공식 수행원까지 대동,요란벅적 전주음악을 울리면서 소련을 방문할 모양이다.
방소단에 서로 끼어들려고 심한 경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1월13일 일본의 유력한 차기총리감인 아베ㆍ신타로(안배진태랑) 전간사장등 자민당대표 방소단은 불과10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가운데 아베는 고르바초프서기장과 회담,「고르비」의 방일문제등 일소간 현안을 매듭지었다고 한다. 일행과 「동행」을 한 외교평론가 미야케ㆍ와스케(삼택화조)는 『숙소인 모스크바 옥차프리호텔(소련공산당영빈관)방 비누가 엄지손가락 손톱만했고 화장지는 거칠어 쓰기 힘들었다』고 돌아온뒤 술회하고있다.
우리사회의 호화혼수ㆍ과소비ㆍ과공이 어쩐지 일맥상통한 듯한 생각이든다. 개인생활이든,외교든간에 「과다혼수」는 금물이다. 분수를 알고 내실을 기해야할때일줄 믿는다.【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