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한 시기에 따라 포도ㆍ땅콩 등 특작물을 융통성있게 재배해 왔으나,미국 농산물 수입개방때문에 경쟁력이 약한 작물을 피하다 보니 무밖에는 달리 심을 것이 없었다』 1백80만 가마,20억원 어치의 무밭을 통째 갈아엎어 폐기처분하면서 절규하는 농민들의 피맺힌 목소리다.2만여평에 재배한 무를 생산가의 절반도 안돼서 출하하지 못해 고민하다 끝내는 폐기하기로 작심,트랙터 4대를 동원해 1만여평의 무밭을 갈아 엎어버리는 전남 나주의 한 농민의 비장한 행동은 외국 농산물의 과다한 수입개방이 농민들에게 어떠한 여파를 가져오고 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이 나라가 농민들의 피땀이 어린 작물이 그처럼 버려져도 되는가 하는 근본을 새삼 생각지 않을 수 없고 개방시대에서 우리 농민들의 살 길을 가르쳐주는 농정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비감한 문제를 제기해 주기도 한다.
정부의 「농정부재」가 빚은 농촌의 피해상은 물론 이번의 「무 과잉생산 파동」에서 처음보는 일은 아니다. 고추를 많이 심었다하면 틀림없이 「고추값 하락파동」이 나고 참깨나 마늘이 부족할 듯해서 재배량을 늘렸다하면 여지없이 가격이 폭락해 농촌가계에 주름살만을 더해왔던 지난 시절의 농민들의 억울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소값과 돼지값 파동으로 자진했던 농민들이 적지않았던 불행한 일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다면 전인구의 20%에 달하는 농민들은 언제까지 수입개방의피해를 감수해야 하며 정부는 언제까지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번의 「무 파동」은 지난 3∼5공시절의 고추ㆍ참깨ㆍ마늘ㆍ소와 돼지값 파동과는 근본적인 원인부터가 다르다고 우리는 본다. 그때는 농민들이 정부의 농정을 불신함으로써 「적게 심으라면 많이 심는 식」의 역행영농측면이 강했기에 농민들의 책임이 더 컸지만,이제는 외국 농산물 과다수입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피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개방이 불가피한 여건이라면 이를 예측한 경작지도나 계획,또는 가격파동에 대비한 대책등은 당연히 따랐어야 했다. 개인의 수요예측이란 빗나가기 십상이고 더욱이 농민의 입장에서 어떤 작물의 전체적인 수급을 판단케 한다는 것은 가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생명과도 같은 토지위에 씨를 뿌리고 공들인 만큼 수확을 기다릴 뿐이다.
여기에 농정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수없는 농산물값 파동에 이는 무값파동은 우리의 농정이 이런 농민들의 고민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말해준다. 무와 배추는 온국민이 사시사철 먹는 부식의 주종으로 그 정도쯤의 수요에 따른 공급량은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농수산부와 시ㆍ도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농민들이 과다한 양을 파종하고 생산하도록까지 방치했는가를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영농기술 향상에도 불구,산업사회속에서 농업의 채산성은 계속 떨어질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농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농정을 펴서 농민의 손해를 줄여주는 대책을 간단없이 펴나가야 한다. 경작지도는 물론 각종 보상책까지 개방시대에 걸맞게 우리 농민을 보호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산업구조의 재편문제를 장기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무밭을 갈아 엎어야만 하는 「농심의 분노」를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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