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수사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변호인의 접견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극히 당연한 이 결정이 다시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구속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위해 접견ㆍ교통권은 필수적 권리임을 대법원의 판결로써 확연하게 밝혔다는데 있다.피고나 피의자는 구속 자체로 이미 자기방어에 제한을 받게 된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인의 도움없이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12조④항에 명기하고 있고 이 원칙은 형사소송법에 의해 다시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 접견의 제한이나 억제는 과거정권의 수사관행에서 자주 물의를 빚어낸 바 있다. 특히 시국과 민감하게 얽힌 공안사건의 경우,수사당국은 기밀유지를 내세워 부분적으로 제한해온 것이 관례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번 결정의 의미는 따라서 이런 「수사상의 필요에 의한 부분제한」에 대해서도 명백한 의견을 제시,변호인 접견권에 따르는 시비는 쐐기가 박힌 셈이고 앞으로 수사과정이나 법의 집행에서 분쟁의 요소는 사라졌다고 봄직하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내리게 되기까지의 경위는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된 서경원의원등 4명의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은데서 발단이 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인권상황의 개선이 민주화의 요건으로 등장한 6공에서 지난 관례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당국으로선 나름대로 애로가 있었을 줄 안다. 수사과정에서 기밀이 드러나 장애를 받는다거나 공소권 행사에 영향이 미치는 경우도 상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법치의 요체는 법의정신에 충실함이다. 법의 규제를 벗어난 법의 해석은 배제함이 마땅한 줄 안다.
엄격하고 공정한 수사는 인권보호와 병행함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인권제약은 수사상 필요나 이유에 의해서 합리화되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구시대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변호인의 도움을 청할 수 있음이 기본인권임이 헌법에 적시된 이상 편법주의는 용인될 수 없고 또 용인되어지지도 않는 법이다.
우리의 인권상황은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과거의 쓰라린 악몽에서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인권문제로 우리가 국내외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이젠 아무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아주 당연하면서도 인권발전에 기여하는 벽돌을 하나 더 쌓았다는 뜻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권의 개선은 당당한 요구와 합리적 논쟁을 거쳐 한발짝씩 전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완전무결은 이상이긴 하나 현실은 복잡하게 작용한다. 한술에 배부를 성급함은 삼가고 하나 둘 고쳐가면 상황은 곧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호인 접견권 같은 당연한 권리가 더 이상 문제되거나 논쟁거리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번같은 시비가 재연되지 않고 또 대법원의 결정이 무게를 더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조용한 인권의 전진에 우리는 크게 고무를 받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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