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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오늘 집권5돌/개혁 견인차… 내일 초대 대통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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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오늘 집권5돌/개혁 견인차… 내일 초대 대통령에

입력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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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ㆍ공화국 연방탈퇴등 숙제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이 11일 집권5주년을 맞는다. 85년 3월11일 체르넨코의 뒤를 이어 서기장으로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취임과 함께 「인간의 얼굴을 간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소련체제의 개혁ㆍ개방과 「핵공포로부터의 해방」을 표방한 긴장완화외교를 적극 추진,소련체제는 물론 세계정세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고르바초프의 대내적 민주화개혁 노력과 시장경제 실험은 최근의 공산당독재폐기 결의와 사유재산제도입 등이 상징하듯이 소련공산체제를 근본적으로 변모 시키고 있다.

또한 그의 신사고외교는 동ㆍ서간의 군비경쟁 및 냉전을 종식시키고,동구권의 탈공산민주화를 촉진,베를린장벽과 동ㆍ서분단질서를 붕괴시키는데 선도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그는 표트르대제 이후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개혁자이자,세계평화질서 회복의 최대유공자로 평가되면서 「세계의 대통령」이란 칭송마저 얻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5년간의 민주화개혁을 발판으로 12일 개최되는 인민대표대회에서 소련사상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돼 한층 강력하고 안정된 권력을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개혁정택의 전도에는 피폐한 경제와 와해기미를 보이고 있는 연방체제등 난제들이 산적,「개혁자 고르바초프」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련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5년 연표

▲85년 3월11일=공산당서기장 취임.

▲85년 8월=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년 11월=레이건과 제네바에서 1차 정상회담

▲86년 2월=27차 공산당대회에서 개혁ㆍ개방정책천명.사하로프박사 유배해제.

▲86년 7월=블라디보스토크선언. 대아시아화해정책 표명.

▲86년 10월=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정상회담.

▲87년 1월=개혁정책본격화. 당간부비밀ㆍ경선도입.

▲87년 7월=아시아ㆍ유럽 핵미사일 전면철거 제안.

▲87년 12월=소정상으로 14년만에 워싱턴 방문. INF(중거리핵전력) 폐기협정 서명.

▲88년 3월=신베오그라드 선언. 동구공산당 독자노선공식인정.

▲88년 5월=아프간주둔군 철수단행. 모스크바에서 레이건과 4차정상회담.

▲88년 9월=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대한경제교류 및 한반도긴장완화 논의제안.

▲88년 12월=흐루시초프 이후 28년만에 UN연설. 동구주둔군 50만명 감축선언.

▲89년 1월=화학무기폐기 선언.

▲89년 3월=인민대표대회 복수후보제 선거실시.

▲89년 4월=당중앙위보수파 1백10명 축출.

▲89년 5월=북경방문 중소정상회담. 관계정상화실현.최고회의의장피선.

▲89년 6월=서독방문. 군사력방어 개념으로 전환선언.

▲89년 7월=바르샤바조약국정상회담에서 「동구개혁불간섭」선언. 동구민주화촉진,발트3국 경제자치 허용.

▲89년 9월=정치국개편,보수파축출.

▲89년 10월=브레즈네프돌트린 공식폐기. 로마교황청방문,관계정상화.

▲89년 12월=몰타 미소정상회담. 냉전종식선언.

▲90년 2월=공산당중앙위전체회의 공산당독재폐기결의. 최고회의 대통령제채택결정.

▲90년 3월=사유재산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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