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고」싫지만 오랜 동지로 유대감”(소 옐친수기「고백」: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고」싫지만 오랜 동지로 유대감”(소 옐친수기「고백」:하)

입력
1990.03.11 00:00
0 0

◎소 부패 구조화… 아무도 못파헤칠것/정육점선 고기 빼돌리기ㆍ상점선 물건 횡령/정치국원들 특권 박탈하려다 시장직 해임돼내가 모스크바시 당제1서기(시장)가 된것은 85년12월,이듬해 2월에는 정치국원후보위원을 겸했다.

모스크바시 당제1서기 취임당시 모스크바시정은 엉망진창이었다. 전임자 그리신은 모스크바시의 모든 간부직을 자신의 심복들로 채워 하나의 왕국을 건설했다.

고르바초프가 나를 임명한 것은 모스크바시에 페레스트로이카(개혁)바람을 불어 넣어 인구9백만의 이 도시를 회생시키라는 뜻이었다. 내가 취임하자 그리신은 해임돼 연금 생활자 신세가 됐다.

당시 모스크바시의 직원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있었고,부패는 곳곳에 만연했다.

예를 들어 어느상점에 송아지 고기가 들어왔다고 하자. 당시 내얼굴은 잘알려져있지 않았기때문에 일반시민들처럼 나란히 줄을 서서 암행할수 있었다. 그러나 점원은「보통쇠고기는 있지만 송아지고기는 없다」고 말한다.

창고속에는 송아지고기가 있었지만 그고기는 창문을 통해 어디론가 옮겨지곤했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자는 그때마다 해임됐다.

공장의 식당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마땅히 있어야할 당근이 없어서 식당의 책임자를 불러 물었더니 「당근은 단1개도 반입되지 않았다」고 잡아떼 그와함께 조사를 해보았다. 트럭운전사는 「틀림없이 당근을 운반해왔다」고 말했다. 창고에 보관됐다가 어딘가로 사라진게 분명했다. 책임자로부터 조리사까지 모두 한통속이니 어딘가로 팔아치워 사복을 채운것이다.

어느 식료품점을 조사했을때였다. 미심쩍은데가 있어 책임자집을 수색해봤더니 그의 방에는 진귀한 식료품들로 그득했다. 「이것들은 무어냐」고 질문하자 그는 태연히「전부 주문받은것들」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의 대답은 옳았다. 그의 방에있던 식료품들은 모두 시 당집행위원회,외무성,시행정기관의 고위관료들로부터 주문받음것임에 틀림없지만 자기집 안방에 쌓아둔것이다.

언젠가 식료품의 출고장부를 조사한적이 있었다. 불가사의한것은 들어온것보다 소비량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소련 오직의 구조는 그누구도 파헤칠수 없다. 그것은 오직이 체계화돼 있기때문인데 내가 가끔 상점이나 시장 또는 창고를 조사하기위해 비밀리에 나가지만 암행사실이 곧 알려져 아무 성과를 거둘수가 없었다.

어느날 한 상점을 순시하는데 젊은 여자판매원이 내옆을 지나치며 「긴히 할얘기가 있다」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집무실로 불러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를 비롯한 모든 판매원들은 하나의 「의무」처럼 손님들의 눈을 속여 상품의 값을 올려 돈을 우려낸다. 판매원들은 이가운데 일정액을 매일 매장주임에게 상납하고,매장주임은 또 일정액을 상점의 책임자에게 상납한다.

매사가 이런식으로 조직화되어있으니 부패를 뿌리뽑는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소련판 마피아 인데,내생각으로는 소련 전체경제의 15%가 이같은 지하경제,정치와 결탁한 마피아로 연결돼 단속이 불가능할것 같았다. 물론 손을 쓸수 있는 여력도 없었지만 내가 단속을 시작하자 이들 마피아들은 공공연히 나에게 반기를 들고 「옐친은 2년도 못버틸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재직중 나는 토요일ㆍ일요일도 반납,하루 20시간이상 일에 매달렸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한밤중 집에 돌아올때 경호원이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어도 너무 피곤해서 차안에 5분이나 10분도 앉아있을때가 많았던 일이다.

그때문인지 모스크바시정도 조금씩 새로운 분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국전체와 충돌할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치국원들의 특전이나 특권을 박탈하는 문제로까지 직결됐는데,결국 이것이 문제가돼 해임을 당하고 말았다.

고르바초프로부터 해임통고를 받을 당시 나는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나에게 「연금생활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왔다.

그러나 나는 이를 거절하고 나 자신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1년반이 지난후인 89년3월 나는 인민대의원으로 재기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고르바초프를 싫어한다. 그래도 오랜기간의 친분때문에 동지적인 유대가 있다. 우리가 서로 알게된것은 내가 스베르들로프스크주 제1서기 시절이었는데,당시 고르바초프는 스타브로폴 지방위원회의 제1서기였다. 처음에는 전화를 통해 알게됐는데 친해진 다음에는 서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교환하곤 했다. 그에대한 나의 인상은 솔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소련은 지금 그가 선장이돼 사나운 풍랑속을 헤쳐나가고 있다. 이나라가 어떻게 될것인가, 또 우리들은 어떤 운명을 맞게될것인가. 모든것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