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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면 점심은 먹여주는데…/“굶어야 하는 일요일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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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면 점심은 먹여주는데…/“굶어야 하는 일요일이 싫어요”

입력
199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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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 이미숙ㆍ은석 남매/아버지 병석­어머니 가출/아버지 생각에 급식도 목에 걸려/쌀­라면 도와줘도 끓일 연탄 없어/굶는 어린이 서울만 2천­전국 9천명서울 난향국민학교에 다니는 이미숙양 (12ㆍ5년2반) 은석군(9ㆍ2년4반) 남매는 등교하지 않는 일요일이 싫다. 학교에 가면 결식아동에게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울수 있지만 일요일에는 굶는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 부끄러움을 덜타고 비교적 쾌활한 은석군은 그래도 동네교회에 나가 간식으로 주는 초코파이로 허기를 때우지만 벌써 부끄러움이 많은 누나 미숙양은 하루종일 굶는 경우가 많다.

서울 관악구 신림7동 102 산꼭대기 남매의 1백만원짜리 전셋집에는 하루 세끼는 커녕 한끼니를 때울 쌀조차없는 날이 허다하다.

아버지 이만학씨(40)는 4년전부터 깊은 병이들어 치료한번 받아보지 못한채 폐인이 되다시피해 항상 누워지내며 기운을 좀 차리면 거리에나가 걸식하다시피해 끼니를 때우는 것이 고작이다.

어머니는 은석군이 젖먹이일때 집을 나간뒤 아무런 소식이 없다.

쌀이없어 아침을 굶는날이면 미숙양은 동생을 겨우달래 함께 학교에 나가지만 은석이는 담임교사나 양호교사에게 달려가 밥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선생님들이 우유와 빵을 사주면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갖다드리겠다며 먹지않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남매는 지난 겨울의 혹한에도 연탄불없는 방에서 살았다. 당장 쌀한톨 없는 마당에 연탄을 살돈이 있으면 라면이라도 사다가 허기를 메워야했기 때문이다 미숙양은 『지난 겨울 혹한때는 추운방에서 정말 얼어죽는 줄 알았다』며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동생을 꼭 껴안고 잠을 잤다』고 말했다.

연탄불이 없기때문에 이웃에서 쌀이나 라면을 갖다주면 집주변 공터에 조그만 솥을 걸어놓고 쓰레기를 주워다 불을지펴 끓여먹는다. 이웃에서 가끔 갖다 주는 깍두기나 동치미가 가장 좋은 반찬이다.

미숙양의 가정형편이 이처럼 어려운데도 동사무소에서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아버지 이씨의 형제가 다섯이나 돼 생활보호대상자 요건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형제중에는 이들을 돌봐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없고 가끔 쌀 몇되를 도와주는 정도이다.

학교와 동네 교회 등에서도 수시로 먹을것과 옷가지를 갖다주긴 하지만 허기와 헐벗음을 벗어날길은 없다.

은석군의 가장 큰 소망은 하루 세깨밥을 배불리 먹는 것. 그리고 또하나 소망을 말하라면 우주3총사 장난감을 갖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결식아동이 서울시내에만 2천여명이 되고 전국적으로는 9천명이 넘는다. 이들중에는 쌀이 있어도 부모의 사정때문에 굶는 경우가 있지만 미숙양 남매처럼 쌀이없는 어린이도 많다.

「사랑의 쌀」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은 오늘도 굶고 있다.<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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