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갑구의 보궐선거를 둘러싸고 지금 웃지못할 희극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말 소위 5공청산의 일환이라며 의원직을 반강제적으로 내놓아야했던 정호용씨가 무소속으로 재출마를 선언했고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인 문희갑씨가 민자당공천으로 출전한 이선거는 한토막의 희극임에는 분명하나 그렇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정치극은 아닌것 같다. 어떻게 보면 정당이나 정책의 대결이 아닌 감정싸움이 많은 우리 정치의 낙후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정씨의 의원직 사퇴와 재출마에 이르기까지의 얽히고 설킨 사정을 살펴보면 인생무상 정치무상을 새삼 일깨워 주는 아이러니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광주사태와 관련,정씨의 공직사퇴를 처음 주장한 것은 평민당과 김대중총재였고 여기에 민정당은 평민당의 정웅의원도 함께 책임을 져야한다고 반발하는등 강경대응했다.
그러나 정씨의 버티기는 민정당이 손을 놓음으로써 한계에 부딪쳐 결국 지난 연말 사퇴서를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새해들어 민정당이 간판을 내리는 합당개편은 정씨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어서 나온 민자당의 「정씨 공천불가」는 더큰 충격을 준 것같다.
사퇴종용시 무슨 약속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민자당의 정씨공천 배제는 결과적으로 정씨가 평민당 요구에 의해 물러간 것이 아니라 민정당 내부의 필요성에 의해서 추방된 게 아니냐는 아이로니컬한 해석도 나왔다. 즉 민정당이 평민당의 손을 빌려 정씨를 제거했다는 결과적인 풀이이다.
더욱 아이로니컬한 것은 정씨 퇴진을 요구했던 평민당이 지금은 정씨를 본의든 아니든간에 옹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계기를 제공한 것은 엉뚱하게도 안기부의 정씨 미행사건이다.
김대중총재가 이를 문제삼은데 이어 지난 7일 국회의 국방 내무위 등에서 평민당의 정웅ㆍ이영권의원 등은 『안기부가 정씨에 대해 불출마를 종용하고 미행토록 하는등 정치사찰을 하고 있다』고 추궁했다.
평민당으로서는 정씨의 재출마가 신생 민자당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내심 싫지 않을 것이다.
평민당은 이제 후보도 내지않고 범여권 범TK사단 인사끼리 맞붙는 내전을 강건너 불보듯 구경만 할 작정인것 같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정씨의 두번째 버티기가 끝까지 갈 수 있느냐에 있는것 같다. 첫번째 버티기는 민정당의 버림을 받아 실패했으나 두번째 버티기는 혼자서 해야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의 개인의사에 달려있다. 그러나 여론은 대체적으로 그의 출마를 말리는 쪽이고 민자당은 노태우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며 번의를 종용하는 설득작업을 하고 있다.
정씨가 이것들을 모두 뿌리치고 과연 끝까지 갈것인가,만일 끝까지 가서 당선된다면 5공청산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인가,또 만일 당선이 되어 혼자 무소속의원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그렇다고 도중에 포기해버리면 무슨꼴이 되는가.
이런저런 의문과 궁금증 속에서 선거전은 불이 붙었는데 국민들은 이 한편의 드라마를 보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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