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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웃들/한기봉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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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웃들/한기봉 사회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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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가 번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그러나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에 앞장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없는 시민들이었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초근목피」와 「보릿고개」 시절에서 성장하면서 쌀에 얽힌 갖가지 「한」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운동이 시작된 지 3일만에 3백만원을 선뜻 기탁한 이철주씨(50ㆍ서울중구 신당6동)는 인터뷰를 사양하는 대신 기자와 소주를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식들에게는 고기잡는 방법만 가르쳐주면 된다. 내 돈은 남들이 잘 먹고 잘 잘 때 꿀꿀이죽을 먹고 입이 돌아갈 정도로 추운 시장길바닥에서 자면서 번 돈이다. 길에서 번돈을 길에 뿌리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9일 쌀 2말값을 내놓고 간 정영진씨(72ㆍ서울양천구 목동)는 『이제 밥술이나 먹고 살만하다. 도시락을 제때에 못싸오는 친구들이 있다는 손자얘기를 듣고 옛날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낼 사람이 내야 하고 받을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의미깊은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한국일보사와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본부는 이 운동을 주관하면서 확실히 우리 사회에 성금기탁자의 계층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정치인들과 정부부처 기업체등도 이 운동을 도와주고 있으나 성금대열의 주인공은 일반시민 학생 기독교신자 시장상인 택시운전사 가정주부 등 우리가 늘상 만나는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고생하면서 모은 돈이기에 더욱 떳떳하다는 표정이 그들에게서 느껴져왔다.

저금통을 턴 동전을 놓고가는 고사리손,쌀 1되값을 내놓고 구태여 이름을 밝히지 않고 돌아서는 물묻은 주부의 손길에 성금의 많고 적음에 신경을 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농부는 우편환으로 1만원을 보내면서 『특별한 사람이 내는 거액보다 더 땀이 묻어 있음을 알아달라』고 썼다.

내 돈이 언제까지나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소박한 이웃들이야말로 사랑의 구좌를 더욱 의미있고 풍요롭게 빛내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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