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버지 임종직전 오빠 찾아”/한필성­필화 남매 회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버지 임종직전 오빠 찾아”/한필성­필화 남매 회견

입력
1990.03.09 00:00
0 0

◎가족얘기 나누며 눈물/“노모 오빠에 큰절하라 당부”/오늘부터 숙식 같이 하기로【삿포로=박태홍특파원】 8일 하오 삿포로 지도세(천세)공항에서 감격적으로 상봉한 한필성ㆍ필화씨 남매는 벅찬 가슴을 안은 채 첫날밤은 프린스호텔에서 따로 휴식을 취한 뒤 9일부터 숙식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들 오누이는 끝내 만날 수 없었던 19년전과 달리 자유롭게 상봉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남북의 이산가족이 아무런 장애가 없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기자회견◁

각각 다른 차를 타고 지도세공항을 떠난 남매는 밤10시15분께 공항에서 동남쪽 40여㎞거리인 삿포로 프린스호텔에 도착,기자회견을 가졌다.

필성씨는 『40년만에 누이동생을 처음으로 만난 기쁨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필화씨는 『19년전 오빠를 만나지 못한 뒤 오늘 같은 만남을 고대해 왔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필화씨는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에 참석키 위해 북한을 떠나올때 85세의 노모가 오빠를 만나거든 큰절을 하고 일본에 있는동안 숙식을 같이 하라고 당부했다』며 울먹였다.

필화씨가 아버지의 임종모습을 회상하면서 『아버님은 임종 직전 「필성이가 안보인다」며 몇차례 일으켜 앉게하다 남한에 있는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다』고 전하자 필성씨는 울먹이며 눈물을 닦았다.

필화씨는 회견도중 『이제 우리어머니 소원이 풀어졌다』며 오빠를 끌어안기도 했다.

필성씨는 수많은 남북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강조하면서 『적십자사를 통한 고향방문단계획이 성사되면 내가 제일 먼저 가겠다』고 말했다.

필화씨는 그러나 『71년에도 남한측의 방해로 오빠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이제 만났으니 지난 얘기는 하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필성씨는 『일단 8일에는 숙소를 따로 정해 휴식을 취한 뒤 9일부터 일본을 떠날때까지 숙식을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한씨의 부인 홍애자씨는 『늦게나마 북에 있는 시어머니 시누이 4명 동서 1명 등 6명에게 줄 금가락지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홍씨는 시어머니의 금반지는 특별히 크게 주문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출 발◁

한씨는 이날 상오11시45분 부인 홍애자씨(53)와 함께 UA820편기로 김포공항을 떠났다. 출국직전 한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한시라도 빨리 동생을 만나 북에 계신 어머님과 가족ㆍ친지들의 소식을 듣고싶다』며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잤다』고 말했다.

힌씨는 하오2시께 동경 나리타공항에 도착,비행기를 바꿔타고 삿포로 지도세(천세)공항으로 향했다.

▷한필성씨집◁

경기 파주의 한씨집에서는 아들 태석군(25ㆍ한양대 기계공학2)과 큰딸 정의씨(28ㆍ유치원교사) 장모 정용선씨(72) 등 4명이 TV에서 방영되는 상봉장면을 지켜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태석군은 『아버지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눈물이 솟구쳤다』며 『TV화면에서 본 고모의 얼굴이 젊었을때보다 주름이 많이 늘었지만 북한체육계를 대표하는 듯한 원숙함이 느껴져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태석군은 또 『아버지가 지난71년 고모를 만나지 못한 채 사진몇장을 갖고 돌아온 뒤 틈만나면 사진을 꺼내보며 고모이야기를 하곤했다』며 『까만 한복차림으로 찍은 모습과 스케이트를 타고있는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로부터 고모의 어린시절과 운동신경이 남달리 발달했다는 등의 회고담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필화◁

한필화씨(48)는 북한체육계에서는 동계체육위원회부위원장과 스케이팅협회 서기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인물로 북한선수단 임원자격으로 삿포로에 왔다.

지난 6일에는 한국팀의 이수영단장과 함께 최근 창립된 아시아빙상연맹(ASU)부회장에 나란히 선출됐다.

유년시절에 진남포 막국수집의 평범한 막내딸이었던 한씨는 지난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3천m경기에서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내면서 북한의 대표선수로 일약 영웅대접을 받게됐다.

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한씨는 그후 코치,협회임원을 두루거치며 북한 체육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힌 뒤 85년 체코,89년 불가리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선수단장으로 참가하는 등 국제대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성대체육교수인 임세진씨와 결혼,이번대회에 동행한 한씨는 그러나 오빠와의 상봉을 눈앞에 두고도 선수들과 함께 트레이닝복차림으로 경기장을 오가며 지도에 열중하는 등 선수관리에 충실한 냉정한 일면을 보이기도 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