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쌀이 남아서 걱정이란다. 일천만섬이 넘는다고 한다. 80년 냉해때 겪었던 흉년말고는 매해 남는 쌀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그 관리유지비만도 연간 수백억에서 한단위 더 웃돌지경이라고 한다.쌀막걸리,쌀소주,쌀과자,쌀라면,주스등 쌀가공품 개발을 서두르고,쌀소비 촉진 캠페인을 벌이기위하여 농협직원 5백여명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종일토록 쌀을 찬양한 일이 엊그제 있었다.
세상에…하늘이 두려워라.
남아도는 쌀 때문에 나라재정이 손실을 겪고,쌀을 주체할 수가 없어 술을 만들어 먹자고 아우성을 치다니….
신문과 TV는 연일,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실상을 보도하고 있지만 이거리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쌀이 남아 돌고 있는 것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죽어 가고 있는 것의 의미를 대조해보려 하지 않는다.
해방전 일본 관헌이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쌀을 빼앗아 갔을때,우리는 목숨을 짓밟힌듯 통분해 하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내 땅에다 내 손으로 씨앗을 뿌려 여름내 땀흘리고 내 손으로 거둔 곡식을 빼앗기고 살아야했다.
쌀은 곧 목숨이었다.
그래서 80년 냉해가 들었을때 이 나라는 큰 일이 났다하여 서둘러서 엄청난 양의 쌀을 수입했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남은 쌀을 두고 이땅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6ㆍ25후 전세계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미국과 몇몇 나라의 구호품을 받아먹고 살아남았다. 그들이 손가락질 하던대로 우리나라는 거지의 나라,소매치기의 나라,고아와 과부의 나라였다. 그때 우리에게는 기대해 볼만한 그 무엇도 없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는 꿈이고 희망이고 있을수가 없었다.
이제 6ㆍ25를 겪은지 40년,거지,도둑,고아의 나라라고 이땅을 향해 손가락질 하던 나라들이 이제는 목을 늘이고 발돋움을 하며 건너다 보고 잇다.
아시안게임,올림픽,수출흑자를 내는 나라,심지어는 소련까지 그 태도를 완전히 바꾸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은 무엇인가. 전세계에서 자살률 제1위(10만명중 48.7명),교통사고사망률도 아마 1위를 배앗기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중독자와 인신매매,떼강도,가정파괴범,산업사회 노사분규는 파괴와 술수로 피차를 모욕하고 짓밟는 난장판을 연출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더불어 살자고 하는짓이 아니라 끝장을 보자고 내닫는 것같기만 하여 그저 두렵기만할 뿐이다.
이게 배가 고파서 생긴 일들이란 말인가? 우리 모두가 감사를 잊고 겸손을 잃은 것에서 시작된 재난임을 알자. 감사를 잊는것이 재난의 시작이고 겸손을 버리는 것이 곧 망하는 길이다.
「저희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되게 하리라」성경 호세아서의 이 한대목은 인간이 기름지게 먹고 편해질수록 늘어나는 것은 죄악뿐이라는 것을 뜻한다.
모자라는 것도 어렵지만 남는 경우는 더욱 조심스럽다.
쌀이 남아서 쌓여있는 이 연유앞에서 이제는 이 민족이 옷깃을 여며야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이 나라 역사에 쌀이 남아서 골치를 앓는 일이 생기다니. 이 일은 어쩌면 이 민족이 치러야 할 6ㆍ25후 40년 한 세대의 역사적인 시험이 될는지도 모른다. 6ㆍ25후 이땅의 40년이 이 민족이 거쳐온 광야길이었다면 이 쌀 문제를 푸는것이야말로 이 민족이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 열게되는 열쇠가 될는지도 모른다.
이 땅에도 아직 점심을 굶고 사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들의 눈에 띄지 않는 그늘에서 고픈 배를 틀어 쥐고 있는 이웃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수단,모잠비크,앙골라에서는 1천5백만명이 굶어죽어 가고있다.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이 고픈 배를 끌어안고 잠을 잔다고하지 않는가. 매일 거의 4만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간다고 한다.
지구라는 별의 재난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느 국지나 어느 한나라의 일이 아니다. 인류가 함께 겪기 시작한 재난임을 알아야한다.
이제는 우리도 사랑의 빚을 갚아볼때도 되었다. 쌀을 나누자, 아프리카에도 중동에도,그리고 북한이 괜찮다고 한다면 북한사람들에게도 쌀을 나누자.
분단된 남한 땅,이작은 녹색의 땅이 붉게 칠해져 있는 저 크고 넓은 아시아대륙을 혼자 떠받치고 있는 지도를 들여다 보자. 이작은 녹색의 땅이 지켜온 자유는 이제 구체적인 사랑으로 만방의 빛이 될때를 만났다고 믿는다.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쌀을 안고가자. 한사람의 뜻이 아니라 이나라 전체의 뜻으로. 선한 일을 위하여 마음만 합쳐지면 그것이 사랑이요 사랑만 있으면 인류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이다.
나누자. 아이도 어른도 옷깃을 여미고 나누는 사랑으로 다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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