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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줄서기」는 사재기도 큰 요인/격변의 사회 현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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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줄서기」는 사재기도 큰 요인/격변의 사회 현지 르포

입력
1990.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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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후 고임ㆍ통화증발… 구매력 더 커져/부동자금 2천억 루블/생필품ㆍ보석 뭐든 매입【모스크바=강병태특파원】 『개혁시작후 상점앞의 줄은 더욱 길어졌고,살수있는 물건은 한층 줄어들었다』는 소련인들의 불평은 소련경제가 중증을 앓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증언」만으로 소련 국민들의 실제 생활이 그만큼 악화됐다고 단정하는것은 무리가 있다.

상점앞의 줄이 길어진것이 기본적으로 소비재 부족때문이긴 하지만 소비자들의 과잉 구매 즉,「사재기」가 중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비누와 합성세제의 품귀현상이 심각해지자 소련당국은 사상최대 물량인 3백만톤의 비누ㆍ합성세제를 긴급 수입,공급했다. 실제 기자가 모스크바시 북쪽외곽에서부터 중심부 크렘린궁에 이르는 지역을 5시간 동안 돌아다녀본 결과 서독제 비누ㆍ합성세제가 무더기로 쌓여있는 시장ㆍ상점들이 여러곳 있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런 생필품이 눈에 띄기만 하면 닥치는대로 사들여 가기 때문에 물건은 언제나 모자라는 것 같고,상점앞의 줄은 계속 길어지기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재기」현상은 생필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내구소비재와 귀금속 골동품에까지 미치고 있고,심지어 희귀서적등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모스크바에 보석매점 러시가 일어났었다. 최근에도 유명한 아르바트거리에 있는 세모츠베리 보석상에는 거의 매일아침 수십명씩의 부인네들이 가게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몰려들어가 닥치는대로 귀고리ㆍ반지등을 사는 모습을 목격할수 있었다.

또 크렘린궁옆 모스크바 호텔의 부속건물에 최근 개장한 프랑스 랑콤화장품 매장을 연일 발디딜틈 없이 메우고 있는 여인들은 「콤팩트5개,루주10개」식으로 한꺼번에 비싼 화장품들을 산뒤 지켜보는 기자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얼굴에 발라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쿠즈네츠크가의 서점가 주변 노상에는 최근 간행된 베스트셀러 소설,시집등을 핸드백에 숨겨다니며 정가의 2∼3배씩에 파는 암서적상들도 많았다. 독서열이 높은 반면 한정발행되는 책들이 품귀가 되기 일쑤여서 책까지 매점과 투기의 대상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재기와 암시장의 번성은 소련국민들이 수요가 충족되지 못한 구매력을 갖고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과잉 구매력은 기본적으로 소련당국이 과거부터 세입 결손을 화폐증발로 보전해온 재정불균형에서 기인한다. 특히 개혁이후 기업의 임금결정권이 확대됨에 따라 생산성향상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이 과잉 구매력을 한층 크게 만들었다. 여기에 무역수입 감소,알코올 판매규제에 따른 세입감소와 체르노빌 원전사고,아르메니아 지진등의 복구사업에 따른 세출증대로 인해 통화증발이 가속화돼 인플레이션이 심화됐다. 이런 상황속에서 일반국민들의 예금액은 지난해 3천억 루블이상으로 치솟았으며,이밖에도 1천5백억∼2천억 루블의 부동자금이 국민들의 수중에 있어 사재기와 투기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소련경제의 문제는 재정적자와 과잉 통화공급,그리고 소비재 부족이란 3가지 요소가 한데 엉켜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소련당국도 지난해 3월「재정건전화및 화폐유통 정상화에 관한 긴급조치」를 결정,국가투자 삭감ㆍ임금 3%이상 인상규제ㆍ국방비 14%삭감등과 함께 알코올 규제철회,소비재 수입확대등을 통해 재정적자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또 내구소비재 증산을 위해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등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비상대책은 지난해 국민들의 현금소득이 과거 5년치에 해당하는 12%가 늘어난데서 보듯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올해초 소련정부는 통화 환수책의 하나로 은행저축이율 연3%보다 크게 높은 연이율 5%짜리 장기재정증권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파격적인 이율로도 일반의 인플레심리에는 크게 못미쳐 목표인 1백50억루블어치 판매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따라 연이율 10%짜리 단기채권 발매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소련이 군축추세속에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군수산업을 통해 민수소비재 생산에도 난관이 많다. 지난 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전공화국 상품견본시장」에서는 군수업체에서만 생산하는 1천8백루블짜리 비디오ㆍ카셋ㆍ레코더(VCR)의 주문량이 전년도의 2배인 16만대에 달했다.

또 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1천5백루블),비디오 카메라(8백50루블) 등의 주문도 모두 전년도의 2∼3배에 달해 근로자 월평균 임금 2백루블인 이나라에도 내구성 또는 사치성 소비재 수요가 폭증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문제는 이들 군수산업체의 「첨단」전자제품 가격이 서방제품과 품질등을 비교할때 국제시장 가격보다 2∼3배 높은데도 낮은 생산성 때문에 군수산업체에 엄청난 적자를 안겨주는데 있다. VCR의 경우 한대생산에 근로자 1인 노동일수로 따져 일본ㆍ한국등의 10배수준인 1백40일이 소요된다. 따라서 현상황에서는 군수산업을 활용한 소비재 공급확대가 정부재정 적자축소라는 최종목표와는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파 경제학자 가브릴ㆍ포포프의 말대로 「과도기의 모순」에 허덕이고 있는 소련경제의 장래를 비관만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들 개혁파 경제학자들은 토지 사유제와 주택일반 판매등 개혁조치가 본격 시행되면 과잉 통화의 상당부분을 흡수할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현재 군수산업체에서 60달러(약4만원)수준에 생산ㆍ판매하고 있는 전자레인지와 같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소비재 생산이 가속화될 경우 국제시장을 석권할수 있다는 야심마저 갖고있다. 개혁파 경제학자 니콜라이ㆍ슈멜료프는 『소련경제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다가 방금 일어난 환자』라고 규정한바 있다. 소련경제를 언제까지나 「중환자」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일수 있음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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