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북의 변함없는 대남전략이 드러날 때마다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실망하면서 기대하고,다시 절망하지만 거듭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는 대상이 바로 북한이다.김일성이 신년초 휴전선남쪽의 「콘크리트장벽」 제거를 촉구하고 나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느낀 분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통독을 향한 급진전,소련을 위시한 동구의 혁명적 변혁속에서 이제야말로 북한이 변할차례라고 온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중에 김일성이 구사한 전술은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가증스런 것이었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휴전선남쪽의 콘크리트장벽 제거를 촉구함으로써 마치 남북교류의 장애요인이 남쪽에 있는 것처럼 국내외에 위장했다. 소련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한반도의 장벽제거」를 촉구했을때 그들은 소련의 진의와 관계없이 「한건」 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진실성은 커녕 기만적인 전술로 대응하면서 세계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북한의 자세가 가장 잘 드러난 케이스가 콘크리트장벽제거 주장이다.
이번에 발견된 「제4땅굴」은 새삼 우리를 한탄하게 한다. 북한이 휴전선남쪽을 향해 땅굴을 파기시작한 것은 지난 71년 김일성이 『군사분계선을 지하로 관통하라』는 「교시」를 내린후부터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4땅굴」과 아직 공개되지않은 더많은 땅굴들이 70년대 초에 판것이기를 바라고 있다.
차마 북한이 오늘과 같은 냉전와해의 국제분위기 속에서 홀로 땅굴을 파는 「미친짓」을 하지 않았기를 우리는 빌고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은 그이상의 존재였던가. 한쪽으로는 남북교류를 추진하는 제스처를 쓰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땅굴공사를 벌이고,궁지에 몰리면 언제든지 「콘크리트 장벽」 운운하며 생떼를 쓸수있는 존재가 북한이 아닐까. 우리의 의식속에 있는 북한이란 신뢰할 수 없고,언제 무슨일을 저지를지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남북교류나 통일의 꿈을 후퇴시킬 수는 없다. 베를린장벽 붕괴이전의 동독을 생각한다면 희망을 가질수 있을 것이다. 61년8월 「서구의 파시즘침투」를 막는다는 구실로 장벽을 쌓았던 동독은 장벽을 넘어 자유세계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2백여명이나 사살했다. 동독의 변화는 서독의 정치ㆍ경제 발전과 굳건한 양식에 의해 리드되고 강요된것이지 그들 스스로 주도한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자신을 신뢰하며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땅굴과 장벽은 우리의 익숙한 절망일뿐 새로운 장애요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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