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평소 이따금 찾아뵙던 현민 유진오선생과 어느날 환담을 나누었을때 일이다. 오랫동안 학계에 몸담아 오다가 후년에 정계,그것도 말썽많은 야당에 발을 디딘후 가장 힘들었던 점에 관해 물었다.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야당을 야당답게 이끄는것. 즉 야당을 제대로 하는일이었지. 정치란 어느정도 짐작했었지만 처음 야당에 가보고 내심 크게 실망했어. 그야말로 허상과 허세 투성이더군. 국민에게 적당히 꾸미고 동정을 호소해서 그 뒷받침으로 운영해나가는 식이었어. 돈도 인재도 없는데다 정부의 탄압과 감시가 워낙 심하니 어쩔수 없었겠지. 하고한날 파벌싸움이 그치지 않았지만 그속에서도 참으면서 묵묵히 야당생활을 감수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았지….
아무튼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치,또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야당을 하자니 그게 여간 힘들지 않더란 말이야. 흔히 야당하면 마구 정부 여당을 공격하고 무책임하게 떠드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정말 책임있는 야당,수권태세를 갖춘 야당을 하기란 나라운영하기 만큼이나 힘든 일이지…』
현민은 야당을 맡았다가 정말 고생만 흠씬하고 떠났다. 평생을 조용한 상아탑에서 지내다가 66년가을 제1야당이었던 민중당의 삼고초려에 못이겨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며 이듬해 2월 명실상부한 통합야당인 신민당의 당수직을 맡았다.
현민이 야당당수가 되었을때 정가일각에서는 그의 「무계보 무경험」을 들어 멀지않아 구렁이같은 노회한 야당꾼들에게 조종되다 좌초하고 말것이라고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는 고행을 감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쇼나하고 국민을 속이고 막후흥정으로 사리와 파리를 챙기는 일은 묵과하지 않았다. 안으로는 불꽃튀는 파벌경쟁속에 균형있는 인재등용과 함께 민주적 운영으로 밑바닥 당원의 뜻을 존중하고 밖으로는 박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투쟁으로 밀고나갔다. 결국 현민은 69년 3선개헌 저지투쟁을 지휘하다가 쓰러져 4년만에 정계를 떠났다.
우리정당사상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를 받았던 야당으로 흔히 50년대의 민주당과 60∼70년대의 신민당을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로 정부에 반대되는 세력과 의견의 구심점이 되어 역대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고 국민의 뜻과 요구를 성실하게 부응하며 당도 전국적인 조직인데다가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운영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바로 이점 때문에 국민들은 파벌싸움에 실망하면서도 야당을 지원했고 야당과 야당인들은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정통야당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않았던 것이다.
여소야대의 4당구조가 어느날 전격적으로 단행되어,3당통합에 의한 거여소야의 양당체제로 뒤바뀌었을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쪽은 평민당이었을 것이다. 하룻밤새에 제1야당이라는 느긋했던 지위에서 교소야당으로 전락했으니 이만저만한 날벼락이 아닌것이다.
평민당은 차츰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우리야말로 유일무이한 정통 야당이다』 『이제부터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3당통합이 단행됐을때 국민들의 가장 큰 2가지 관심은 거대여당이 장차 어떤기능을 할것인가와 외톨이가된 평민당이 싫건좋건 정계개편이후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일것인가에 집중되었었다.
그러나 국민이 볼때 아직까지 평민당이 달라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징후가 보이지 않아 실망을 느끼고 있는게 사실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새로운 정국상황을 맞아 평민당이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 위해 이룩해야할 자기개혁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무엇보다 철저한 체질개선이다. 당 구석구석에 스민 타성과 정체와 경직성을 벗어나 새시대에 대비,새로 정당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둘째는 당의 민주적 운영이다. 지난날 민주당과 신민당의 민주적 운영은 정평이 나있다. 어쩌면 파벌대립으로 인한 영향일수도 있지만 평당원이 당수등을 비판공격할수 있을 정도로 당내 언론자유가 만개되었다. 얼핏보면 엉성하고 곧 붕괴될것 같지만 비판의 자유가 무성하고 언로가 트인 야당의 뿌리와 심지는 튼튼하기만 한것이다.
오죽하면 70년대 『관광코스로 야당관람을 넣자』는 농담까지 나오지 않았느가. 다음으로는 지역당 이미지를 씻고 전국적ㆍ전국민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나라 역대 정통야당이 지역당이었던 적은 없다. 사심과 조건없이 문을 열어 모두가 참여할수 있게 해야한다. 셋째 김대중 총재의 당권독점을 하루빨리 완화하는 일이다. 야당세력을 이끄는 김총재의 관록과 경험,그리고 지도력에 대해 의심하는 국민은 그리많지 않다. 그러나 당내 민주화,지역주의의 탈피를 위해서도 당권 독점은 하루빨리 지양해야 한다. 3당통합후 김총재는 당의 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뜻을 밝혀 관심을 모았지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 실패후 88년 2월 김총재가 집단지도체제를 밝힌 다음 부총재와 당무위원 일부를 재야에 할애하는 것으로 매듭지은것을 기억하고 있다. 진정한 집단지도체제란 당을 모두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다. 어느면에선 김총재가 평민당을 수권야당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살신성인의 자세로 당권의 민주적 분점을 선언하고 2선으로 물러선다는 각오를 가질 필요가 있다.
끝으로 지난날의 야당처럼 강성발언과 투쟁일변도의 자세를 벗고 국민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연구하는 정책정당 수권정당으로 전환돼야 한다. 오늘의 유권자들은 결코 목소리만 높이고 투쟁에만 능한 야당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할것이다.
오늘날 평민당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무변화 무개혁으로 국민의 사시속에 유일야당만을 내세우는 한계야당으로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태어난다는 자세로 모든 문제점과 타성을 툭툭털고 모든국민이 언제나 선택하고 지지할수 있는 국민정당으로 민주적 개혁을 통해 탈바꿈을 할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유일한 야당이라고 국민이 무조건 밀어줄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는 버려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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