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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사임설/박찬식 외신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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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사임설/박찬식 외신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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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서 제일 큰 신문 빌트지는 지난 2월1일 고르바초프가 독일재통일을 지지했다는 뉴스를 3색의 대형 활자로 제목을 달아 독자들에게 전했다. 이신문은 『고르바초프가 없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라며 독일민족에게 이처럼 큰 기쁨을 준 그에게 「명예독일인」지위를 부여하자고 제안했다.그 이틀뒤인 3일 소련 교포작가 아나톨리 김은 조선대 김근식 교수에게 보낸 「숲속의 시인에게」라는 수필에서 그가 김시습의 후손임을 알게된 기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숲에 황금빛 나뭇잎이 뒹굴던 지난가을 나는 대규모 소련대표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가볼수 있었습니다. 지구 구석구석에서 한국인들을 모이게 했던 한민족 체전은 단지 조상들의 땅을 볼 기회만 준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참가했던 우리 모두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느낀 것이지만 조상들의 땅은 우리를 기억해주고 자신으로 부터 지구의 끝없는 변방으로 멀리 떠나버린 우리를 자식으로서 사랑해주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는 늘 푸른 소나무가 되어야 하고 잉어는 은빛 비늘의 잉어가 되어야 하고 꾀꼬리는 또랑또랑 노래를 부르는 새가 되어야 하듯이』존재의 행복이란 천명이 성취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꽉 채워지는 것이며,한국인의 천명은 한국인이 되는데 있음을 깨달았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핏줄을 찾은 기쁨을 독일인들과 아나톨리 김에게 준 고르바초프는 요즘 바로 그 민족문제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사임설은 작년말 공산당중앙위에서 개혁추진 방안을 놓고 보수파와 격론을 벌인 다음부터 여러차례 보도됐지만 결정판은 1월30일 미CNN TV의 「당서기장 사임설」이다. 그 며칠전 민족분리독립운동을 무마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던 그는 노동자들과의 토론 도중 말이 막히자 격노하는 모습이 전세계에 TV로 전해졌다.

옆에서 말리는 그의 부인 라이사에게 『닥쳐』라고 소리치는 실태까지 보였다. 실망과 분노를 안고 크렘린으로 돌아온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CNN TV의 「고르바초프 사임설」은 이럴때 터져나왔다. 89개국 방송에 중계되고 세계 정치ㆍ경제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방송의 모스크바특파원 스티브ㆍ허스트는 앵커와의 전화보고를 통해 소련공산당의 한 고위소식통을 인용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당서기장직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발적인 위력을 가진 대특종이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세계외환시장에서 달러가 폭등하고 증권시장에서는 주가가 연쇄폭락했다. 백악관은 기자들에게 정보 부재를 호소하느라 진땀을 뺐고 모스크바 전화선은 온종일 이 뉴스를 확인하는 전화로 불이 날 지경이었다.

이 보도는 바로 다음날 고프바초프 자신이 부인함으로써 오보임이 밝혀졌으나,잘못은 「서기장직 사임고려」를 실각으로 오인한 희망적 정보분석에 있었을 뿐 정보자체는 사실이었다. 사흘후인 2월3일 모스크바 라디오의 영문통신 인터팩스는 새로 기초된 공산당 강령의 내용을 전하면서 당정치국과 서기장직이 폐지되고 당의장직을 신설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강령은 곧이어 소집된 당중앙위 총회에서 그대로 채택됐고 오는 6월 열릴 전당대회를 거쳐 현재의 정치국원 전원과 서기장이 일제히 사임하게 돼있다.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은 사실인 셈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해프닝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언론이 외부에 이용당할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정치적 위기에 몰려 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기미를 보이자 CNN TV처럼 영향력이 큰 보도기관에 「사임설」을 고의로 흘려 소동을 빚은 후 이를 유유히 부인함으로써 그 반사작용으로 내외에 더욱 튼튼한 이미지를 심을수 있다는 점을 노린것이다. 타임지는 지난해말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을때도 소련 정부가 그 첫번째 비난성명을 미 대사관에 전달하지 않고 CNN TV에 주었던 일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종을 쫓는 보도기관의 약점을 이용한 수법이다.

그 고르바초프가 앞으로 열흘 쯤 뒤면 소련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다시 그 일주일 뒤 소련에 가는 김영삼씨가 그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한국에 걸린 소련의 이해는 분명하다. 한반도 긴장완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ㆍ경제적 부담을 덜고 가능하다면 한국을 발판으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 지난달 10일 모스크바 미소외무장관회담후 나온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한반도 장벽」발언도 같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소련이 한국 사람들 좋으라고 장벽이 허물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북방정책도 소련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이 그들의 이해와 결과적으로 합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소련지도자들을 만날 김영삼씨의 세계관과 통일전략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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