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통제」 파괴하는 정치개혁 속도가 관건/군수산업→민수산업 전환땐 더 앞당길 수도소련의 급진개혁파 경제학자를 대표하는 가브릴ㆍ포포프(57)는 레오니드ㆍ아발킨,아벨ㆍ아간베기얀,니콜라이ㆍ슈멜료프 등과 더불어 소련 경제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지난달 20일 과학원경제연구소의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가진 약 1시간에 걸친 회견에서 소련의 경제상황을 『과도기의 모순에 가득찬 상황』으로 규정하면서도 경제체제정비에 필요한 최단기간을 5년으로 전망,소련경제의 장래를 낙관했다.
포포프는 모스크바대학에서 소련사상 최연소인 34세에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과학원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최고권위의 경제이론지 「경제문제」의 편집장을 맡고 있고 인민대의원이기도 하다.
소련경제의 현황을 어떻게 보는가.
▲낡은 경제구조가 개혁구조와 완전히 교체되지 못해 갈등과 모순에 가득찬 상황이다. 토지사유제 등 개혁법령들이 도입되고 있으나 지도부가 달리는 기차를 따라가는 형국이어서 모순이 첨예화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조속한 이행을 위해선 유통제도구축이 긴요하다. 정부가 안정과 생활수준유지를 위해 수입을 제한하는 등 급속한 개혁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련의 정확한 경제수준에 대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시각과 평가들이 제시돼 혼란을 주고 있다. 당신의 객관적 평가는.
▲경제구조가 서방시장경제와 판이해 달러 가치로의 환산ㆍ비교가 불가능하다. 개인적 평가로는 전세계국가중 중간이하 수준에 있다. 다만 군수산업분야를 포함시킬 경우 다소 높아질 것이다.
소련경제가 현 상황에 이른 원인은 무엇인가.
▲과거 역대지도부의 잘못과 개혁과도기의 불가피한 부작용,그리고 현지도부의 실정 등 3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70년대 투자정책의 과오다. 석유수출로 번 외화를 경제개선,기술개발,산업기반건설 등에 쓰지 않고 미국산 밀 등 식료품수입에 낭비했다. 소련 농업은 운용만 제대로 한다면 식량자급이 충분하다. 토지분배 등 농업개혁을 진작에 했어야 했다.
서방에서는 그같은 오류를 소련체제의 근본적 결함 탓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서방측 분석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역대지도부의 정책상 오류는 무능한 비전문관료들이 경제정책 결정권을 장악하는 소련체제의 속성상 불가피한 것이었다. 지금도 고르바초프,야코블레프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무능한 비전문가다. 소련에는 전문인재가 풍부하고,가용자원도 막대하다. 한국과 같이 효율적 경제운용체제를 갖춘다면 장래는 낙관적이다. 문제는 보수세력의 저항이 아니라 개혁실행기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중앙통제적인 낡은 제도를 파괴하는 정치개혁의 속도에 달려있다. 3월4일 전국적인 최고소비예트 선거에서 공산당의 장악을 벗어난 인민소비예트들이 구성되면 상황은 급변할 것으로 기대한다.
소련에 호의적인 브란트 전 서독총리 같은 이도 소련경제의 회생에는 25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는데.
▲체제개혁이 제대로 진전되면 5년 정도면 현 위기상황이 타개될 것으로 낙관한다. 러시아인의 나태함을 지적하지만 공산혁명전 러시아인은 근면한 국민이었다. 사회개혁은 러시아인을 「살해」한 이념적 교조주의를 해체,러시아인의 자질을 되살릴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농지사유제가 전면도입되면 3∼4년내에 농업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또군수산업이 전면적으로 민수산업으로 전환되면 경제재건은 한층 앞당겨질 것이다.
우리는 보수세력의 저항에 묶여 개혁이 지연되면 소련사회와 국가가 붕괴될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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