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부작용을 우려하는 신중론에 밀려 본래 뜻에서 크게 퇴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명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이를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로 알지만 실시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염려하는 나머지 당초의 구상을 대폭 수정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로서도 실명제의 내년실시를 앞두고 증시등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 신중론자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정부자체의 완화책으로서 공공사업투자분에 대한 자금출처의 불문,거래내역의 비밀보장,증권차익과세의 연기,실명전환의 유예기간 설정,그리고 실명화에 따른 관련법 위반을 일정기간 동안 문제삼지 않는다는 경과조치 마련 등을 검토중에 있다고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재계와 민자당 그리고 일부 관변학자들은 금융자산의 실명화가 일반의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증권시장등에 막대한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이 회복될 때까지 이의 실시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자산의 실명화에 불안을 느끼는 큰손들이 한꺼번에 증시를 떠날 경우 증시가 침체해질 것은 정한 이치이고 그 바람에 타격을 받게 될 중산층 이하의 영세투자자들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산의 해외도피 현상도 심해질 수 있고,조세저항의 도가 강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현상들이 어느 계층,어느 부류에 의해서 야기될 것이며 그 범주가 어느 정도까지 확산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실명으로 금융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재벌급대주주거나 지하경제와 직ㆍ간접으로 연계되어 있는 큰손들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이다. 증권을 포함한 모든 금융자산의 실명률이 98%에 이른다는 사실 하나로 미루어보아도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불안해할 사람들이 어느 계층이며 그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는 자명해진다.
물론 큰손이 아닌 소액금융자산 소유자도 조세부담문제등으로 불안감을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실명제의 취지가 금융거래의 실명화에보다 금융자산의 파악과 과세에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 조속한 시일내에 금융실명제에 대한 확실한 내용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확정,발표해야 한다고 수차에 걸쳐 정부에 재촉한 바 있다.
이와같이 일반투자자의 불안해소는 서둘러 해야 되고,또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한 보완대책의 마련은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만 경제적 충격이나 부작용을 빌미로 실명제 실시 자체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우리로서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실명제의 실시가 공평한 과세,부의 편재현상 시정 등 경제정의의 구현을 목적한 것인 이상 그 취지는 끝까지 관철되어야 옳으며 더욱이나 이런 정책에서마저 정부의 일관된 의지가 견지되지 못한다면 일관성없는 정부시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조장될 것으로 믿어지기에 그러하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보완책의 조속한 명시를 촉구하면서 이 제도는 예정대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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