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굴지의 일간지 뉴욕타임스지 대모 이피진ㆍ옥스ㆍ설즈버거 여사가 지난 26일 미 코네티컷주 스탬퍼드 자택에서 최침중 호흡장애로 사망했다. 향년 97세.테네시에서 신문을 발간하던 아버지 아돌프ㆍ옥스씨가 1896년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던 뉴욕타임스를 인수,NYT와 인연을 맺게된 그녀는 약관 20세에 이사로 경영에 참여,80세때 명예이사로 일선에서 퇴진할때까지 60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오늘날 연간 수입 18억달러(약1조2천억원)규모의 대신문사로 키워냈다.
명문 바너드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고집으로 편집에 직접 참여치 못했던 그녀는 대주주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지식을 배경으로 역대 발행인 선정과 제작과정을 통해 신문기자의 꿈을 풀어나갔다.
35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남편 아서ㆍHㆍ설즈버거를 발행인에 오르게했으며 61년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자 맏사위인 오빌ㆍ드리푸스에게 자리를 잇게했다.
그러나 63년 유명했던 뉴욕신문 파업사태 와중에서 맏사위가 사망하자 외아들인 아서ㆍOㆍ설즈버거를 발행인겸 회장에 선임,오늘에 이르게했다.
매일 전지면을 샅샅이 읽어 「뉴욕타임스의 가장 열성적인 독자」로 불리기도 했던 그녀는 해박한 경험을 토대로 흑인ㆍ유태인 권익신장ㆍ공원가꾸기 캠페인등 사회봉사활동을 리드하기도 했으며 가명으로 신문에 기고,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대학에서의 미국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녀의 투고로 시작돼 전국적으로 공감대를 펼친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44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로 미전역 대학에 미국사 강좌가 개설됐음은 물론이다.
타고난 호기심과 끊임없는 탐구욕으로 매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그녀는 87세때 손자에게 구술한 회고록에서 『나의 세계는 신문주위를 끝없이 맴도는 것』이라고 간단히 술회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같았던 뉴욕타임스에는 자신의 회고록 끝에 『항상 내일이 있고 다음날이 있다. 캐물어야할 질문이 아직도 많고 들어야할 답변도 많다. 또 봐야할 곳 만나야할 사람이 아직 너무 많다』고 지적,언제나 사회의 공기로서 깨어있을 것을 당부했다.
유족으로는 모두 뉴욕타임스 이사인 세딸을 비롯,13명의 손자,24명의 증손자를 남겨놓았다.<워싱턴=이재승특파원>워싱턴=이재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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