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국외로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가 국가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면서 혁명적인 민주화의 열풍과 변혁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물결은 멀지않아 동북아 사회주의체제에도 전파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누구도 예견할 수 없었던 독일의 재통일이 현실적인 과제로 성큼 다가왔는가 하면,국제 냉전체제의 유산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는 획기적인 발전이 국제사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편 눈을 돌려 국내상황을 봅시다. 그동안 오래도록 쌓여온 권위주의의 유산을 청산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의 내실을 기하려는 국민적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때나 그러하듯이 이같은 과정은 많은 고통과 진통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소외되고 억압당해온 집단들의 참여욕구가 커지면서 일어나는 혼란을 보고 자칫하면 우리사회가 분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힘에 의한 통치를 거부하면서 다양한 목소리와 더불어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야하고 그러한 체제에 적응할 능력을 키워야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회고해 보건대,여러분은 우리사회의 진통과 갈등이 가장 극심했던 1980년대 후반기에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다시말해서 여러분은 남달리 심한 갈등,방황,고통,번민속에서 학업을 마친 세대입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질곡이 우리의 희망을 억누르고 사회의 발전과 정의를 가로막았을때 여러분은 방관하거나 타협하지않고 반항하고 혹은 정면으로 도전하며 살신성인의 의기를 보였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인 민주주의가 이 땅에 확고히 정착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는 앞으로 10년안에 판가름이 날것으로 봅니다. 우리가 성숙한 선진산업국가로 성장할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도 이 기간동안에 결정될 것입니다.
사회의 다양한 이익집단간의 평화로운 공존,남북한 민족공동체로의 복원도 이 기간안에 성취되어야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현실은,그것이 과도기이기 때문에 겪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미해결의 문제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부의 불균등 분배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고질적인 지역간의 감정,이념ㆍ가치관ㆍ도덕관의 괴리에서 오는 세대간 갈등 등이 더욱 심화될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도층ㆍ지식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의 단견적 이기주의는 갈등과 분열을 가속화시켜가는듯 합니다. 또한 도덕적규범의 혼란으로 민생치안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실적문제를 직면하면서 문제해결의 요체는 바로 교육의 내실화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하며,대학은 그 기능의 내실을 기하면서 미래에 대비할 능력을 키워야 하고,나아가 그때그때의 산적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올바른 지혜를 적극적으로 축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보는것과 같이 일그러진 사회의 정신적 분열상을 광정하고 갈라진 민족을 다시 통합시키며 새로운 21세기에 적응하고 개척해가는데 필요한 철학과 이념의 창조와 개발이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통일을 대비하는 안목과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왕성한 민족주의의 열정을 가지고 그동안 통일문제에 관해 고민해왔던 것을 우리는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나간후에도 여러분은 민족통일을 주도하는 세대로서 긍지를 가지기 바라며 변화하고있는 국내외정세에 탄력있게 대응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확고한 토대위에서 통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추진하는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 가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990년 2월26일
서울대학교 총장 조완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