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전환기인 90년대를 맞으면서 동북아의 정세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정착문제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미ㆍ소 외무장관의 한반도 긴장완화 언급에 이어 국내에서도 신뢰구축ㆍ군축의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이런 시점에 정부가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개선이 빠른 속도로 진전됨에 따라 금년에 유엔가입안을 제출,적극적인 외교접촉을 벌이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에 전과 다른 관심을 갖게 된다.
남다른 관심이란 종래와 같이 유엔가입을 우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나 역할격상이란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당면과제인 긴장완화,신뢰구축 등의 문제들을 이 유엔의 틀속에서 촉진시킬 수 없겠는가 하는 희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유엔외교의 골간은 남북한 교차승인에 의한 유엔동시가입이었고 북한이 국내외의 사정상 유엔가입을 위한 준비태세가 돼 있지 않다면,한국만이라도 먼저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북한은 남북한의 동시유엔가입이나 한국의 단독가입이 「2개의 코리아」를 고정화시켜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론을 강변해왔다. 그러나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독일 통일문제를 보면 동서독의 유엔동시가입과 「교차승인」 등 국제적인 틀속에서 이뤄진 상호신뢰는 오늘의 독일을 있게 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교훈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른바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독일통일을 위한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서독간의 현실적인 교류확대에 의한 관계개선ㆍ신뢰구축에 그 본질이 있다는 논리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전 세계 국가에서 한국처럼 유엔과 깊은 연관을 가진 나라도 없을 것이다. 건국서부터 6ㆍ25,그리고 온갖 전문기구 가입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인 남북문제에선 이렇다 할 「영향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유엔이란 기구의 상대적인 지위격하도 있겠지만 유엔에 대한 우리 외교 자체가 그같은 안점을 너무 도외시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이번 보도를 보고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1949년 이래 여러 차례 유엔가입안을 냈으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소련의 거부권 발동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나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동서진영의 해빙,우리나라 북방외교의 성숙은 이제 유엔에서 중국과 소련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타진해 볼 시점에 왔다고 본다. 유엔가입이 분단 고착이 아니라 통일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 전단계인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면 이 문제는 전과 다른 시각으로 회원국에 비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뢰구축이란 것이 국제적 장치하에서 더욱 바람직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면 유엔은 가장 적절한 무대일 것이다. 따라서 이날의 보도는 우리 유엔외교의 새 출발로 이해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5년뒤인 95년이면 「분단 반세기」에 접어든다. 그때까지는 우리민족의 지상과제인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 분단국가의 통일은 종국적으로는 그 민족의 통일의 열망과 의지에 달려 있지만 여기에 이르는 과정에는 주변국의 영향이나 국제사회의 장치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동서독의 통일접근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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