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부터 투옥 경험… 「반미」 대명사콘트라 반군과의 내전으로 팽배한 염전 분위기와 경제파탄에 시달려온 니카라과의 민심을 수습하고 산디니스타혁명의 정통성을 민의를 통해 확인코자 했던 이번 선거가 오히려 오르테가(44)에게 치명적인 자충수가 됐다.
오르테가의 패배로 79년 소모사독재정권을 몰락시키고 집권한 산디니스타 좌익정권은 민주개혁의 도미노 속에 침몰한 동구 보수공산정권의 전철을 밟아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났다.
니카라과 민중혁명의 영웅 오르테가는 46년 11월 탄광도시 라리베르타드에서 출생,반 소모사정권의 게릴라로 투쟁해온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반체제 투쟁에 눈을 떴다.
15세때 마나과 주재 미대사관에 투석한 혐의로,16세때는 정부요인의 승용차에 방화한 혐의로 2년간 투옥됐으며 이후 67년부터 74년까지 감옥생활을 한데서 보여주듯 그의 생애 자체는 투옥과 역경으로 점철된 혁명가의 삶이었다.
63년 중앙아메리카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3개월만에 자퇴,산디니스타 해방전선(FSLN)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혁명투쟁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르테가는 79년 7월 소모사 정권이 몰락하고 좌익혁명이 성공하자 국가재건 평의회 의장직을 맡으면서 33세의 나이에 실권자로 부상했다. 84년 11월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산디니스타정권의 초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한 오르테가는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 반군의 저항에 맞서 쿠바의 카스트로와 함께 미국의 앞마당격인 중남미에서 반미 좌익세력의 교두보를 지켜왔다.
오르테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거결과가 보여준 수치는 결코 무시할수 없는것』이라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니카라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61년에 창설된 이래 18년의 반독재 투쟁과 11년의 집권을 통해 이룩했던 산디니스타혁명의 신화는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오르테가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14개 야당의 연합체인 국민야당연합(UNO)의 내분과 차모로의 지도력 부족으로 새정부가 경제난 타개에 실패할 경우 차모로의 임기가 끝나는 6년뒤 오르테가는 군부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딛고 또다시 국민의 영웅으로 부상할수 있기 때문이다.<이재열기자>이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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