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의 파벌계보의 행방이 시중의 화제다.지난1월22일 「보수연합」이 발표된뒤 민자당안에는 민정 민주 공화의 3계보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당지도부는 계보ㆍ파벌정치는 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2백16석의 막강한 원내의석을 보유한 민자당이 계파와 관계없이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운영될 것인지 궁금하다. 혹자는 민자등은 3정당 계보를 용광로에 넣어 일체가 되도록 녹일것이라고 한다. 하나 지나치게 비대해진 정당은 반드시 정책ㆍ이념등의 대립을 가져와 핵분열을 일으키기 쉽다. 비근한 예로 제2공화국때 민주당의 신ㆍ구파 분열을 들수가 있다.
3ㆍ15부정선거 때문에 「4ㆍ19혁명」을 거쳐 실시된 「7ㆍ29총선」에서 핍박받던 야당 민주당은 의석의 80%이상을 차지했다. 졸지에 야당으로 전락한 자유당이나 무소속의원들의 위상은 보잘것 없는 한낱 장식물로 변했다.
정치의 역학관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어서 거대여당 민주당은 끝내 윤보선씨 중심의 구파와 장면씨를 리더로 한 신파로 분열,항쟁을 일삼게 된다. 거기서 소산된 정치불안이 「5ㆍ16군사혁명」을 불러 일으킨 한 원인이 된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요즘 민자당의 실세로 부각된 박철언장관이 이끄는 월계수회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은것 같다. 「포스트 노」를 겨냥,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노리는 장기 포석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민정계의 요지부동한 파벌탄생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산하에 모인 의원수가 30명부터 50명선까지 된다고 하니 만만한 정치세력이 아님이 분명하다.
민자당이 창당하면서 표방한것은 보혁구도하에 절대 안정의석을 보유,장기집권을 하면서 경제번영을 이룩한 일본 자유민주당식 정치였던것 같다. 자민당은 주지하는 바와같이 5개 파벌로 구성,각파벌마다 보스를 업고 당내당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실시된 일본의 중의원 총선거 기사가 국내신문들의 1면 톱에 오른것도 그와같은 맥락에서 온 사연이리라. 총선결과 다케시타(죽하)파 69석,미야자와(궁택)파 62석,아베(안배)파 61석,나카소네(중회근)파 48석,고모토(하본)파 26석으로 나타났다. 겨우 과반수를 넘는 세력분포다. 다케시타 미야자와 아베등 주류 3파는 파벌의 역학 때문에 당분간 소수파인 고모토파의 가이후(해부준수)총리에게 속투시키기로 합의하고 당간사장 총무회장 정무조사회장등 당3역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이것 역시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직을 민정ㆍ민주ㆍ공화계가 한자리씩 차지한 민자당의 경우와 비슷하다.
민자당과 일본 자민당이 다른 점은 민자당안에 사실상 계보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계보ㆍ파벌정치는 안하겠다는 의지인지 모른다. 거대정당안에 계보ㆍ파벌이 없으면 역설적으로 말해 1인1당의 「콩알정치」가 되기 십상인데도 말이다.
일본 자만당파벌의 특징은 ①독자적인 사무실을 차리고 ②파벌마다 자금원을 따로 마련,구성원에게 선거비용ㆍ세찬비를 지급하며 ③선거때면 당본부와 별도로 응원일정이나 작전을 짠다. ④조각ㆍ당직개편때는 파벌대표가 엽궁의 창구가 되며 ⑤당총재 공선때는 파벌간의 합종연형공작을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와같은 파벌정치의 폐해가 없는것은 아니다. 우선 내분이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정당의 내분은 다시말해서 파벌간의 항쟁이다. 하지만 1체 당내에 아무런 대립이 없고 항쟁이 없는 상태는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1국1당제 독재정당이 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본디 민주정치는 양당제건 다당제건간에 대립하는 정치집단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정책이나 정치사상의 대립이 있으면 내부항쟁이 따르는것도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에서 파벌의 존재는 폐해라기 보다 차라리 데모크라시의 징표라고도 할만하다. 다만 파벌정치의 원인이 정책중심이 아니고 인사나 자금의 문제라면 그것은 곤란한 일이다.
미국 민주정치의 안정감도 다름이 아니다. 차대의 지도자가 부통령,각료,주지사,상원의원직 등을 맡아 파벌을 만들고 끊임없이 정치적 수완,업적면에서 국민의 비판을 받게되는데 있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조건을 갖춘 몇사람의 실력자 가운데서 대권주자가 선택되고 있지 않은가.
야구경기에서 승리하려면 한사람의 뛰어난 투수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견실한 내야수비진,어깨가 강한 외야수들,그리고 3ㆍ4ㆍ5번의 트리오를 중심으로한 타격진을 골고루 겸비해야 한다.
지금 민자당안에는 누가 무어라해도 민정ㆍ민주ㆍ공화의 3계보가 할거하고 있다. 민주ㆍ공화계는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이 아직 카리스마처럼 군림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민정계를 누가 통합,리드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월계수회가 베일을 벗고 사조직에서 공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구심점을 찾는 운동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민정계의 다른 중간보스들의 활동은 제약해 놓고 대통령의 인척만이 클로스업 된다면 어딘가 불공평하지 않은가.
민정계의 실세로 급부상한 박장관은 노대통령과의 관계에서「해와 달」로 비유되기도 하는 듯하다. 해의 후광이 있어야 달은 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가 진뒤에도 달이 빛을 반사할 수 있을는지도 더 두고 볼일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임기만료전 이미 그런 현상을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차기 또는 차차기를 지향한다면 당내 컨센서스를 통해 파벌을 양성화시키고 그 「리더감」은 국민의 심판을 끊임없이 받는다는 자세로 거동할 필요가 있다.
계파정치가 꼭 나쁜것은 아니다. 일본 자민당을 따라간다면서 필요에 따라 견강부회식으로 모방할 일만은 아닌것 같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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