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따라 속도 결정유럽에서의 군축논의가 몰타미소정상회담에서 동서냉전종식을 선언한 이후 숨가쁘게 진전되고 있는데 비해 극동에서의 군축논의는 아직은 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지역은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등 양대군사기구의 존재에서 보듯이 동서양진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따라서 유럽군축은 양대군사기구의 맹주격인 미소의 합의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극동지역에서의 상황은 유럽에 비해 복잡하기 이를데 없다.
미소관계가 기본축을 이루고 있음은 유럽과 마찬가지 이지만 중국이 독립변수로서 복합적인 세력균형을 구성하고 있고,일본의 군사대국화 문제와 여전히 냉전적 대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관계도 무시못할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처럼 어느 한쪽의 일방적 감축이나 탈냉전선언이 상대방에게 즉각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세계적 추세인 신데탕트시대의 진전은 극동군축논의를 불가피한 현안문제로 떠올리게 했으며 90년도에 접어들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극동지역에서의 군축이니셔티브는 소련이 취했다.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은 89년5월 인민대표대회연설을 통해 극동군 12만명을 포함,아시아지역에서 모두 20만의 병력을 90년말까지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소련의 이같은 일방적 군축선언은 미중일 3개국을 모두 겨냥한 것으로 「선제삭감」을 통해 상대국과의 군축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소련의 일방적 군축선언은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고르바초프의 방중에 앞서 중국이 자국에대한 공격의 전초부대로 인식하고 있는 몽고주둔 소련군의 대규모철수를 시작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대일관계에 있어서도 소련극동군의 핵심인 태평양함대의 함정일부를 폐기하고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북방4개도서반환문제에 대해 「공동관리방안」을 제시하는 등 전진적인 자세를 보이고있다.
소련의 이러한 일련의 군축이니셔티브는 마침내 미국측의 자세에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은 아직 소련의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기본입장을 버리지않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자에 따른 국방예산의 감축필요성은 미국이 소련의 극동군감축움직임에 더이상 오불관언하는 태도를 용납하지않고 있다.
남북한간의 냉전적 대치상황이 별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주한 미공군기지 일부를 폐쇄한 것은 극동지역에서의 대소전략이 변화내지는 조정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적 구조가 완전청산되지않은 가운데 군축이 논의되면서 방위비분담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미군의 주둔이 대소전략적 차원보다는 주둔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주둔국은 방위비분담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남북한관계를 개선시켜 미군철군을 받아들이느냐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을 위해 방위비분담을 늘려야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지향한 단계적 철군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반도의 군축논의는 남북한관계의 개선과 맞물리면서 그 속도와 폭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주일미군의 경우 역시 미국은 일본측에 유지비부담을 요구하는등 「경제대국」에 걸맞는 안보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관련,일본의 뿌리깊은 대소불신과 미국의 역할감소에 따른 일본의 군사대국화 우려가 군축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인해 소련을 겨냥한 미중일 3각체제의 근본골격이 변화를 보이지않자 소련은 북방4개도서 및 연해주지역의 비무장화를 제의하는등 군축논의 진전을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취했다. 하지만 일본이 현안으로 삼고있는 북방4개도서반환문제는 소련이 이곳을 자국방위의 전략적요충으로 간주하고 있기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반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양국의 갈등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고르바초프집권이후 소련의 양보와 경제개발이라는 자체필요성때문에 소련의 군축제의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중국도 동구변혁이 심화되면서 주춤한 상태이다. 중국의 집권보수파들이 체제안보를 위해 「중소이념분쟁」을 선택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활발하게 진행돼온 중소양국의 군축논의를 정체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이와같은 복합적 요인때문에 극동에서의 군축논의는 유럽에 비해 활발하지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이지역 역시 범세계적인 군축추세에 따라 갈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미소가 최근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극동의 안정에 긴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극동군축논의 진전에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케했다.
미소간에 냉전구조가 청산되는 마당에 중국이 대소군비증강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며 일본도 소련의 화해제스처에 종래의 입장을 점차 누그러뜨리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 요소가 결합될때 극동지역에서의 군축논의도 유럽지역처럼 급진전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 【이장훈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