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해외서 독립쟁취 위한 투쟁 일관/민족분열ㆍ이념혼란ㆍ종족경제 등 과제 산적신생 나미비아의 독립운동가 삼ㆍ누조마(60)가 16일 초대 대통령에 당선돼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조국의 홀로서기를 주도하게 됐다.
지난해 11월 유엔 감시하에 치러진 제헌의회선거를 통해 구성된 72명의 의회는 이날 7개 정당 단독후보로 지명된 누조마를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추대,신생 독립국가의 단합 의지를 전세계에 과시했다.
골수파 마르크스주의 「투사」라는 강성 이미지로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오던 누조마는 이날의 승리로 또한차례의 정치적 역량을 과시하며 실용주의적 정치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나미비아 북단 오밤보랜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누조마의 반생은 남아공으로 부터의 독립쟁취를 위한 망명 무장항쟁으로 점철돼왔다.
청년시절 민족적 자각에 눈을 뜬 누조마는 철도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사상불온」으로 낙인찍혀 해고된 것을 계기로 백인 식민지 정권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파업을 주도하는 등 지하 저항운동에 투신했다.
59년 파업사태와 관련해 구속됐던 누조마는 1년만에 보석으로 풀려나자 곧장 해외로 망명,30여년간을 가나ㆍ잠비아 등지에서 나미비아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며 독립투쟁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60년 오밤보족을 주축으로한 나미비아 민족주의자들이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한 이발소에서 결성한 SWAPO(서남아 인민기구)의 의장에 추대된 그는 66년 남아공이 나미비아 신탁통치의 무효화를 선언한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자 그때까지의 비폭럭 투쟁노선을 버리고 무장항쟁에 돌입했다.
SWAPO는 당시 탈식민반제 운동을 전개하던 다른 아프리카 민족주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기초한 1당독재 이념을 채택했고 이에따라 누조마는 서방 세계에게는 달갑지 않은 「빨갱이」(REDS)로,국내 반대파에게는 「국경선에서만 기웃거리는 비겁자」로 비난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남아공의 독립허용 방침에 따라 금의환향한 누조마는 조국땅에 엎드려 입맞추며 『다시는 이땅에 유혈과 혼란이 없는 화평의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경직된 SWAPO 공산주의 노선을 수정,시장경제를 도입한 혼합경제주의를 채택하는 등 민족화합정책을 주장하고 나섰다.
SWAPO가 제헌의회 선거에서 41석을 확보,다수당으로 집권하게되자 누조마는 야당인사의 내각기용 백인의 정책참여유도 등 유연한 자세를 취해 그동안 우려되던 신생국의 내부 반목과 불신을 해소했다.
하지만 나미비아의 앞날이 「장미빛」이라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나미비아에는 오랜 식민통치 기간을 통해 뿌리내린 민족분열과 이념의 혼란,종속적 경제구조 등 짧은 시간에는 쉽게 풀어나갈수 없는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21일 역사상 최초로 독립을 맞이하는 1백30만 나미비아인들의 장래는 이제 누조마의 두 어깨에 걸렸다. 【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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