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에 있었던 민주자유당 김영삼최고위원 초청 관훈토론회는 말로만 들어오던 여러가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우선 거대여당으로 불쑥 나타난 민주자유당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신당의 실체가 우리정치의 변화를 대표하는 것 같았다. 4당체제로는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무슨 변화가 와야한다는 소리가 높았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하루아침에 그 질서를 무너뜨린 실체를 대한다는 것은 큰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최고위원이라는 직함도 상당히 거리감을 주었다.
옛날 민주당이나 구신민당등 야당에서는 가끔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을때 나왔었지만 여당에서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자당이라는 당명도 낯설고 최고위원이라는 직함도 낯선데 여기에 김영삼이라는 이름 석자가 같이 어우러지니 더욱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자나 토론자들은 「김최고위원」이라고 정확한 호칭을 부르려고 애를 쓰다가도 종종 평소의 습관대로 「김총재」로 부르는 본의 아닌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의 놀라움은 토론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점점 더 커져갔다.
김영삼씨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야당총재가 아니었다.
막강한 권력에 용기있게 도전하는 고집스런 투사가 아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열면 무서운 원색의 슬로건이 튀어나오던 긴장된 얼굴은 이제 김씨의 것이 아니었다.
달변이 아닌 것은 야당총재 시절에도 유명했지만 이날 토론에서는 상당히 자신있는 어조로 자신의 변신을 설득하려 했다.
특히 이날 보여준 여유있는 태도는 가장 큰 변화같았다.
사람이 자리를 바꾸고 자리가 다시 사람을 바꾸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야당을 했느냐는 듯이 변화의 논리를 무기로 여당대표로서의 첫 시험에 당당히 응했다. 그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공산당독재를 포기하는 엄청난 세계적 변화앞에 한국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그래서 4당체제를 깨는 정치혁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87년 12월 대통령선거당시 군정종식을 위한 공격목표로 삼았던 노태우대통령에 대해 『성실하고 솔직하고 능력있는 분』이라고 칭찬 일변도의 평가를 서슴없이 자신있게 내리는 대목에서는 실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큰 변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변화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들리는 가운데서도 단 한가지 김대중 평민당총재에 대한 감정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국민들이 얼마나 이 변화를 수용하느냐는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였던 부산에서도 나날이 여론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궁극적인 평가는 선거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심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김씨와 민자당이 국민앞에 약속한 것을 이제부터는 「변치말고」 지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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