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개혁」 조화가 앞길 좌우/파벌등 곳곳에 잡음소지 잠복/거대조직 「경직성」 극복도 과제… 정치질서 새 국면거대통합 신당인 민주자유당이 9일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수임기관 합동회의를 기점으로 사실상 공식출범했다. 정치지도자들의 「이해합일」에 따른 결과이긴 하나 개헌선을 훨씬 넘는 2백16석의 비대몸집을 가진 신당이 발진함으로써 정치질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지난달 22일 3당총재가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한 지 20일만에 모습을 갖춘 민자당은 오는 15일의 합당등록등 법적절차를 남겨놓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신여권 구도를 완료한 셈이며 이에 따른 계보정치등 새 정치관행을 창당정신에 맞춰 펼쳐나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민자당이 정책과 노선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의 자연스런 이합집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인위적 정파담합의 결과로 탄생한 만큼 이제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해나가야 하게 된 것이다.
우선 2년여 동안에 걸친 여소야대의 4당체제가 갖는 구조적비효율성을 타개,안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안정을 기하고 밖으로 변화하는 세계및 남북관계에 대비한다는 명분에 얼마만큼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가가 신당의 성패를 가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신당을 낳게 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향후 정치질서 재편의 향배에 따라 신당자체의 성패여부를 넘어 정치발전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스스로 간판을 내리고 40년 전통야당의 맥을 이어온 정당이 하루아침에 여권으로 변신하게 된 「정치실험」을 놓고 아직도 상당수 국민이 얼떨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화려한 신당청사진 뒤에 있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개인적 권력이해 초점을 맞추는 비판적 시선이 적지 않고 현실적으로 호남대 비호남의 지역적 대립구조를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숨길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민자당은 먼저 이질적 뿌리를 가진 정파간 갈등을 어떻게 용해시켜 건전한 정당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이와 함께 거대조직의 속성이게 마련인 「경직성」을 부단히 쇄신하며 이른바 안정과 개혁의 양날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아가야 하는 「사활적」 과제도 안고 있다.
3당총재가 이날 합동회의 인사말에서 「정치적 동지」를 강조하며 민주화와 번영을 위한 개혁의지를 새삼 천명한 것은 이같은 과제를 십분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 듯하다. 아울러 노태우대통령이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고와 용기있는 결단을 요구한다』,김영삼총재가 『개혁의지를 불태워 신정치시대를 주도해야 한다』,김종필총재가 『크다고 교만하지 말고 강하다고 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대 국민선언이자 당에 대한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정치변란기를 틈타 출현한 거대여당이 한결같이 개혁의지를 천명했지만 결국 자기부정으로 끝나 정치의 후진성을 가속화시켰던 경험에서 보면 신당주도세력의 구호인 「신사고」가 여전히 생경하게 들리는 게 사실. 물론 국민적 기반을 달리해온 정당이 한살림을 차림으로써 견제와 균형이 초기에 제도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또한 창당초 합의제의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는등 당헌체계나 정강정책에 실질적인 개혁내용을 담으려고 고심해온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같다.
이는 또 임박한 지자제선거와 92년 총선,더욱 크게는 내각제개헌과 차기대권 향배를 앞두고 신당에 대한 국민적 설득력과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내적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각 정파간의 이견으로 예상보다 정강정책이 후퇴하긴 했지만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 등 경제ㆍ사회개혁의지를 담은 것도 신당출범의 국민적 공감대가 불가결하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당 지지세력의 상당수가 경제적 기득권층이고 신당관계자들이 벌써부터 성장위주로의 정책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계층간ㆍ지역간ㆍ세대간의 갈등해소를 내세운 신당의 입지가 지역성의 심화와 계층간 갈등으로 의외로 빨리 시련에 봉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면한 당직배분등 당권을 둘러싼 정파간 이해상충도 큰 불만요인.
이러한 당내의 사정을 감안하면 헌정사상 첫 정치실험을 시도하는 신당의 전도가 험난한 게 사실. 반면 관측통들은 이질적 세 정파가 이뤄낸 정립체제의 유지발전 여부에 정치지도자및 구성원들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만큼 당분간 당내갈등은 「내연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당은 이제 행정부및 국회관계에서 국정운영의 전권을 행사하게 됨으로써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자신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다.
당정관계와 대야관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된 신당은 내부로부터의 부단한 개혁요구를 외면할 경우 4당체제 이상의 비효율성에다 거대신당의 경직성까지 가중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평민당이나 태동중인 야권신당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지 못할 경우 민자당은 종래의 정치적 소모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민자당 관계자들은 결코 「힘의 우위」를 과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거대조직의 관성을 얼마만큼 극복해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과거의 인적자원을 그대로 물려받은 채 돌연한 사고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정당의 혁명적 체질변화가 있으리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자당은 내부적으로 지구당조직책 인선,과도기 이후의 지도체제 정비에서부터 사무처요원 정리에 이르기까지 잡음이 불가피한 문제들을 도처에 깔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당이 구상하는 정치행태와 정치문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각을 깨우치는 일일 것이며 이러한 자각이 선행되지 않는 한 민자당의 전도는 결코 예측할 수 없게 되어 있다.<이유식기자>이유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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