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소련 태생의 무스티슬라프ㆍ로스트로포비치가 미국 망명 16년만에 모국을 방문,연주회를 갖는다. 그는 70년대초 소련에서 당국으로부터 박해받는 그의 친구 솔제니친을 자기집에 숨겨준 것이 탄로되어 솔제니친이 강제추방된 데 뒤이어 74년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그는 미국의 내셔널ㆍ심포니ㆍ오케스트라를 인솔하고 소련에 가서 오는 13ㆍ14일엔 모스크바에서,15ㆍ16일엔 레닌그라드에서 공연하는데 13일 모스크바의 볼쇼이홀에서 그가 지휘할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 그것은 로스트로포비치가 74년 소련을 떠나기 직전 그가 모국에서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바로 그 곡목이다. ◆「비창」은 1893년 10월28일 작곡자 차이코프스키가 직접지휘로 초연하고 악보는 다음날 출판사로 보냈다. 악보를 보내기 직전 그의 동생 모데스토가 들렀을 때 형제는 제목을 의논했다. 그때는 러시아의 상류계급에서 프랑스어를 상용하다시피 하던 때였다. 동생이 프랑스어로 트라지크(비극)로 권하자 형은 거절했다. 다시 파테티크(비창)로 제의했을 때 차이코프스키가 동의했다. 「비극」과 「비창」의 미묘한 차이를 형제는 공감했던 모양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비창」을 끝으로 하여 모국을 떠났다가 16년만에 「비창」을 가지고 모국을 방문했다는 데서 야릇한 감상이 우러날 수도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1893년 2월23일 그의 친구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이 곡을 쓰면서 여러번 울었다」고 술회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돌아온 모국에서 「비창」을 지휘하면서 또 어떤 감회로 울지 모른다. ◆그는 미국을 떠나기 직전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국에 정착하지 않고 미국으로 되돌아갈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가 16년만에나마 모국을 떳떳이 방문할 수 있게 된 환경은 역시 소련 사회의 자유화다. 소련은 이른바 개혁의 바람으로 잃는 것도 더러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쩌면 엄청나게 더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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