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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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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소련 태생의 무스티슬라프ㆍ로스트로포비치가 미국 망명 16년만에 모국을 방문,연주회를 갖는다. 그는 70년대초 소련에서 당국으로부터 박해받는 그의 친구 솔제니친을 자기집에 숨겨준 것이 탄로되어 솔제니친이 강제추방된 데 뒤이어 74년 미국으로 이주했었다. ◆그는 미국의 내셔널ㆍ심포니ㆍ오케스트라를 인솔하고 소련에 가서 오는 13ㆍ14일엔 모스크바에서,15ㆍ16일엔 레닌그라드에서 공연하는데 13일 모스크바의 볼쇼이홀에서 그가 지휘할 곡목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 그것은 로스트로포비치가 74년 소련을 떠나기 직전 그가 모국에서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바로 그 곡목이다. ◆「비창」은 1893년 10월28일 작곡자 차이코프스키가 직접지휘로 초연하고 악보는 다음날 출판사로 보냈다. 악보를 보내기 직전 그의 동생 모데스토가 들렀을 때 형제는 제목을 의논했다. 그때는 러시아의 상류계급에서 프랑스어를 상용하다시피 하던 때였다. 동생이 프랑스어로 트라지크(비극)로 권하자 형은 거절했다. 다시 파테티크(비창)로 제의했을 때 차이코프스키가 동의했다. 「비극」과 「비창」의 미묘한 차이를 형제는 공감했던 모양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비창」을 끝으로 하여 모국을 떠났다가 16년만에 「비창」을 가지고 모국을 방문했다는 데서 야릇한 감상이 우러날 수도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1893년 2월23일 그의 친구 다비도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이 곡을 쓰면서 여러번 울었다」고 술회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돌아온 모국에서 「비창」을 지휘하면서 또 어떤 감회로 울지 모른다. ◆그는 미국을 떠나기 직전 「벅찬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국에 정착하지 않고 미국으로 되돌아갈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가 16년만에나마 모국을 떳떳이 방문할 수 있게 된 환경은 역시 소련 사회의 자유화다. 소련은 이른바 개혁의 바람으로 잃는 것도 더러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쩌면 엄청나게 더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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