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주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경천동지」로 시작하여 「구국결단」과 「명예혁명」에 이르기까지 숱한 문자들이 줄을 이었다.말의 행진은,지난달 22일,『국민의 선택을 따라 출범한 이 공화국 국정책임을 지고 있는…』,또 『오랜 세월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쳐 온…』 그리고 「국태민안의 신념을 꿋꿋이 실천해 온…」 정치지도자 세사람이 한자리에 서면서 시작됐다. 선언주체를 밝힌 기다란 형용구에서 보듯 공동선언은 자부로 차 있다. 그내용은 이런 말로 점철된다.
『새로운 사고와 결단』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
『새로운 정치구조』
『새로운 정치질서』
『새로운 국민정당』
『새로운 기원』
『새로운 세계,희망의 미래』
『새로운 역사의 장』
맛보기로 잠깐 추려 봐도 「새로운」이 이처럼 많다. 길지도 않은 선언문 곳곳에 박힌 「새로운」이 그야말로 보석장식처럼 반짝인다. 그러나 그 「새로운」은 얼마나 새로운가. 새롭다는 것이 예전 것과 다름을 뜻한다면,이들 「새로운」은 예전 것과 얼마나 다른가.
말은,달이 바뀐 3일 세사람의 공동발표문으로 이어진다.
『부단한 개혁』
『지속적 민주화』
『과감한 정책』
어제 신당이 채택한 창당선언문과 정강정책은 이 말들을 부연한 것이다. 말의 행렬은 이로써 일단락을 보았다.
이에 이르러,어딘가 허한 생각이 든다. 얼마나 새로운가,얼마나 다른가의 회의는 끝내 가시지를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새로운가,무엇이 다른가의문이 더해진다.
왜 그럴까. 지난 몇주동안 들은 말들이,듣기에는 좋으나,실속은 정치적 관용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들이 기대했던 알맹이로 열지를 않은 것이다. 그 알맹이란 온갖 「새로운」의결론으로 제시했어야 할 「새로운 정책」이다.
정책은 국민들의 요구라는 투입에 따른 산출이다. 이 과정을 포함한 산출의 모든 것을 국민이 검증하고 동의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막스ㆍ베버가 말하는 「정통성의 신념」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신당작업의 한 단원이라고 할 정강ㆍ정책은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투입의 과정이 빠진대신 수사,그리고 「추상으로의 도피」로 채워진 것이다.
실제로 신당의 정강ㆍ정책 작성도 정책론이 아닌 수사론에 그친 듯하다. 「개혁」은 야당투라 덜쓰고,「민족중흥」은 3공투라 안되고,「정의사회」는 5공투라 안되고. 그러면 6공투ㆍ민자투는 무엇인가. 무색아닌가.
그래도 이 정강ㆍ정책중에서 구체적이고 생색이라 할 것이,지금 5천달러인 1인당 국민소득을 1만5천달러로 끌어 올린다는 소득3배가공약이다. 손쉽게 복리계산을 해 보면,10년동안 해마다 11.6%의 성장으로 목표가 달성된다는 답이 나온다. 지금단계의 우리경제가 이정도의 고도성장을 게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기준치인 5천달러는 명목적인 것이다. 그중의 큰몫은 떨어진 달러값과 오른 물가를 반영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명목 1만5천달러의 목표는,환율과 물가동향에 따라,작년수준,6∼7%의 성장으로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을 더 명확하게 부연해야 공약의 실속을 알수가 있다.
또 소득3배가공약을 보아서는 신당의 지향이 경제성장일 듯한데,정강ㆍ정책은 성장과 분배를 한데 섞어 얼버무리고 있다. 더하여 성장과 안정의 당면 경제 처방을 놓고,창당과정 내내 정치관료와 행정관료가 아웅다웅 한다. 자리를 걸고 안정정책을 지킨다는 경제팀이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물가가 들먹거리고 있다. 이것은 숫제 혼란이다. 어느쪽이든 명확한 정책이 빨리 나와야 한다.
이런 혼란들은,더크게 보아서,신당을 만들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않겠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은 탓이다. 말은 「중도민주」이면서,실속은 「중도보수」쯤인 정강ㆍ정책이 이를 말해 준다. 「중도민주」를 공감하는 사람일수록 어디로 가는 배냐는 노랫말을 뇔 수 밖에 없다.
이 사정은 어딘가 정치 조크 「나세르의 승용차」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이집트의 나세르를 이은 사다트대통령은,우여곡절 끝에 나세르노선을 이탈,중동평화를 이룩한 공로로 79년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집권초기 나세르로부터 물려받은 승용차를 타고가다 네거리에 이르렀다. 그는 운전기사에게,이 네거리에서 나세르는 어느 방향으로 갔더냐고 물었다.
『늘 좌회전했습니다』
『그래,그러면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차는 우회전하게』
지금의 우리정국이 마치 이와 같다. 주인을 바꾸어,우할지,좌할지. 실속이 모호한 신당의 정강ㆍ정책을 보아서는,좌신호ㆍ우회전도 아닌,무신호ㆍ직진에 그치는 것 아닌가 싶어진다.
그래서 어제 창당을 선언한 신당에 바라는 것은,좌우간 깜빡이를 분명하게 켜고,그 지향대로 가라는 것이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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