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세 쇠락 불구 신앙촌등 성공/물의 장남대신 3남 기업 계승지난7일 타계한 천부교 박태선교주는 지난55년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한국 예수교 전도관을 설립,신흥종교의 교주로 나서기 전까지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서 평범한 엔지니어의 길을 걸아왔다.
20대초반 일본 동경서 항공기부품공장을 운영하다 해방과 함께 귀국 용산구 원효로에서 정밀기계공장을 경영했다. 50년대초 지금은 없어진 남대문 부근 경동교회의 장로로 있던 그는 어느날 자신을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로 지칭,한국예수교전도회관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심령부흥회운동을 펴나갔다.
박교주는 열성 신도들의 헌신적인 헌금 등을 바탕으로 57년 현재의 경기 부천시에 부지 16만평규모의 제1신앙촌을 건설하면서 착실히 교세를 확장해갔다. 교세가 절정기에 오르던 60년대중반 세칭 박장로파신도는 78만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전국 2백여교회에 28만명으로 감소했다.
교세의 쇠락과는 달리 기업의규모는 오히려 급성장,경기 덕소의 제2신앙촌(62년건립ㆍ부지5만평)과 경남 양산군 기장의 제3신앙촌(70년건립ㆍ부지 2백만평) 등 3개 신앙촌과 삼광물산 시온식품 시온합섬 등 10여개 기업체의 자산은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장로는 80년 교명을 천부교로 개칭,기독교와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했다.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교리에서 기독교적 요소를 제거 했으나 여전히 자신을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라는 주장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독교계를 의식,천부교의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교주의 사망으로 일대전환기를 맞게된 천부교는 기업과 종교를 분리,2원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스캔들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장남 동명씨(46)와 미국서 사업을 하는 차남 경명씨(43)대신 3남 윤명씨(40)가 기업을 맡게될 것이며 종교분야는 박교주가 생전에 후계자를 내정해 놓은것으로 알려졌다.<이기창기자>이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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