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기춘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수뇌진들은 매우 언짢은 기분속에 지내고 있다.지난 3일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 3자회동에서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으로 국가보안법상 불고지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대중 평민당총재를 공소취소키로 합의하자 검찰관계자들은 『아직 검찰쪽에 아무런 공식의사가 전달된 바 없다』 『설마 공소취소야 하라고 하겠는가』라며 불쾌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공소취소는 기소유예처분이 가능한 경미한 사건 또는 무죄선고를 받을 우려가 있거나 친고죄에서 고소가 취소됐을 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규정에 관계없이 실제운영에 있어서는 친고죄의 경우를 빼곤 엉뚱한 사람을 기소하고 난 뒤 진범이 잡힌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공소취소를 하는 게 검찰의 오래된 관행이다.
즉 공소취소는 검찰이 스스로 수사상 명백한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공소취소하는 검사는 무죄판결을 받은 때보다 더 나쁜 근무평점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신당창당을 계기로 정치권의 화합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검찰은 「혐의사실이 인정되는」 김대중 총재에 대해 공소취소보다는 국가보안법 개정 때 불고지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면소판결을 받게 하는 쪽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의사에 관계없이 정치인에 대한 공소취소의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5년 12월 12대국회의 예산안통과를 둘러싼 여야의원의 충돌사태로 당시 신민당 의원 7명이 폭력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가 8개월여만에 정치권에서의 화합조치로 공소취소됐었다.
당시 의원들의 공소취소를 발표한 검찰간부는 기자들에게 『정치인에 대한 공소취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못박았지만 불과 3년반만에 또한번 자존심 상하는 사태를 맞게 됐다.
검찰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공안정국주도」 「야당탄압」이라는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총재를 기소했던 검찰이 타의에 의해 소신을 번복해야 하는 지경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총재에 대한 기소가 지나쳤다는 여론도 아직 살아있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은 기소조치가 과연 합당했는가를 다시 검토해보고 특히 공안사건에서 경직된 시각을 보여온 수사관행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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