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1>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2년이지난 1955년9월19일상오 서울명동의 시공관에는 2천여명의 대의원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장내를 메웠고 밖에는 입장못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확성기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자유당정권의 소위 사사오입 억지 개헌에 반발하여 모든 야당세력이 결집한 민주당의 창당대회 모습이다. 예화1>
집단지도체제의 수장으로 선출된 해공 신익희대표최고위원이 인사말을 했다.
『이자리에 서고보니 만감이 교차함을 느낍니다. 우리국민이 민주독립국가를 만들자고 한것이 엊그제인데… 자유당의 불법무도한 독재정권은 이나라민주주의의 숨통을 짓눌렀습니다. 이제부터 모두가 한뜻으로 뭉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유당의 횡포를 막고 국민이 주인이되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되살리기위해 나아 갑시다』
신당의 지도자들인 조병옥ㆍ장면최고위원들이 연설을 할때마다 대회장 안팎은 함성과 뜨거운 박수소리가 파도쳤다.
<예화2>예화2>
60년대초서 70년대까지 야당 사람들은 고참이건 신참이건간에 술자리에 앉기만하면 빼놓지않고 부르는 노래가있었다. 그들 스스로「야당가」라고 이름지은 가요의 원본은 일제말기 전능인작사 손목인작곡에 고복수가 불러 히트한 「사막의 한」이란 노래였다. 즉 「자고나도 사막의길 꿈속에도 사막의 길…」이란 가사를 개작한것이다.
「자고나도 야당의 길/꿈속에도 야당의길/야당은 영원의길/고달픈 나그네길/당수등에 꿈을 싣고/야당의 길을가면/황혼의 지평선도 고달픈 나그네길」
50년대후반 치열했던 반독재투쟁을 거쳐 집권한 민주당정권이 5ㆍ16쿠데타로 붕괴되고 그뒤 공화당정권이 3선개헌과 유신체제로 영구집권을 기도하자 10∼20년간 정통야당생활로 일관해온 지방과 중앙의 당원들은 암울한 심정이었다. 야당의 집권가능성은 막막한데다가 원내진출은 낙타가 바늘구멍뚫기였다. 하기야 야당의 국회의원들도 허탈한 심경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저녁에 대폿집에 모이면 자조와 한탄속에 젓가락 장단에 야당가를 부르며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예화3>예화3>
필자가 아는 Q씨는 50년대후반부터 이땅에 민주주의다운 민주주의를 자기손으로 뿌리를 내리도록 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으로 야당의 외길을 걸어왔다. 바른정치에 대한 열정은 30여년동안 누그러지지 않은것이다.
Q씨는 중부지방의 이름있는 만석꾼집의 아들로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그가 처음부터 사업에 손을 댔다면 지금쯤 거만의 기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가 정치에 입신한것은 우연한 계기때문이었다. 졸업반때 총학생위원장이 되자 친구들은 물론,지방유지들조차 장차 정치를 해야한다고 성원했다. 여기에 힘입어 졸업후 야당에 입당했다.
민주당만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구현할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다.
그로부터 30여년. 『이번만은 꼭…』하는 기대로 출마했으나 번번이 쓴잔을 마셨고 4번 낙선됐을때는 그많던 재산은 사라지고 빚에 쫓기는 신세가되었다. 제3공화국 시절 여당쪽에서 「자리」를 내걸고 몇차례 포섭의 손을 폈으나 Q씨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소신은 바꿀수 없다』고 거절했다.
원칙과 정신만은 양보할수 없다는 자세였다. 그가 3당통합후 오랜만에 전화를 해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것입니까. 나의 설자리는 어디입니까…』
메가톤급 폭탄선언으로 민정 민주 공화등의 3당통합이 발표된후 보름이 지나면서 충격에서 차츰 깨어난 국민들의 관심은 김영삼총재에게 모아지고 있다.
김총재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말대로 40여년간 독재정권으로부터 온갖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굴하지않고 민주발전을 위해 정통야당을 지켜오고 가꿔온 적자였기 때문이다.
민주당신민당민정당민중당신민당통일민주당등 오직 야의 길만을 걸어왔던 그가 세계정치사에서도 유례가 거의 없는 여당과의 통합을 결행했다는점에서 아직도 전국각지에서 「변절이냐」 「우국충정을 위한 변신이냐」는 논쟁이 그치지않고 있는것이다.
이제 김총재는 오랫동안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국민과 많은 당원들에 대해 통합결단과 관련,몇가지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밝혀야한다.
첫째 이른바 「신사고」로 정쟁의 악순환의 연속을 차단하는 문제이다. 야당이 판에막은 구태의연한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은 옳다. 나라밖의 정세와 국민의식은 날로변하는데 전통야당이라고 묵은 주장과 강령을 무슨 보물단지처럼 끼고 앉아서는 낙오되게 마련이다. 또 4당구조로는 혼란과 지역주의만을 심화시킨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이 일단 그려준 구도인만큼 정치력으로 극복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정당통합은 같은 뿌리와 속성을 지닌 평민당에 먼저 제의,노력한후 끝내 불연일 경우 어쩔수 없었다는 결단이 옳은 순서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통합신당의 여야관계에 대한 자세이다. 지난날과 같이 국력을 소모하는 무모한 대립과 대결 양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상적인 정치체제하에서 여야관계는 집권자와 건전한 비판자의 자세임은 김총재자신이 더잘알것이다. 이것이 집권당의 독주ㆍ횡포와 야당의 무작정반대자세로 극한투쟁이 생기고 적의 개념으로 발전한것이다. 김총재는 여당의 입장에선 이상 건전야당의 육성대안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제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셋째 「모든것은 뛰어넘는」 문제이다. 국제적으로 엄청난 대변혁의 시대에 적응,생존하기위해 국민적 화해는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 반국민적이고 위법적인 사항등에 대해서까지 모든것을 눈감을수는 없다. 그것은 진정한 화해가 아니다. 그같은 과오와 시행착오는 분명히 가리는것이 참된 총화의 지름길인것이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이번 결단이 결코 「대권」을 위한것이 아니었다는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한다. 그렇지않아도 많은 국민과 당원들은 투표에 의하지 않고 민주당이 통합 여당으로 변신한데대해 갖가지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
김총재의 결단이 진정 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일으키고 통일에 대비하기위한 구당구국적결심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기위해서도 이번에야말로 진정 마음을 비워야 한다. 김총재는 국민과 당원들이 장차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는점을 잊지말아야 할것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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